본문 바로가기

본문

후쿠시마 수산물 ‘미래 위험’ 인정…일본, 다시 제소 가능성

중앙선데이 2019.04.20 00:29 632호 6면 지면보기
WTO 상소기구, 1심 번복
장승화

장승화

“일본의 뒤끝에 대비해야 한다.”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의 주문이다. 장 원장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Appellate Body) 재판관이었다. 왜 WTO 상소기구가 1심을 뒤집고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의 손을 들어줬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통상법 전문가다. 중앙SUNDAY는 WTO 재판관들의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 집무실에서 장 원장을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참 드문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며) 저로서는 예상했던 일이다. 지난해 정부의 분쟁대응팀과 함께 상소이유서를 작성하면서 WTO 상소기구가 1심 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상소기구가 1심 판정을 뒤집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던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다만 위생검역(SPS) 사건에서 이번처럼 거의 완전히 뒤집힌 건 처음이다. 1심이 상소기구 판례법을 충실히 따르지 않고 일본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일본의 뒤끝에 대비해야”
 
1심이 상소기구 핀례법을 꼭 따라야 하나.
“그런 법규가 따로 있지는 않다. 다만 그렇지 않은 1심 판정은 상소되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상소기구의 자기모순이다.”
 
그 판례법은 무엇인가.
“상소기구는 ‘협정위반을 따질 때 당장 나타난 위험 지표(방사능수치)뿐 아니라 미래 위험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그런데 1심은 후쿠시마 수산물에서 나온 방사능 수치가 국제 공인 안전기준 이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손을 들어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장 원장이 말한 판정례란 2015년 미국-인도 농산물 분쟁과 2014년 유럽연합(EU)-캐나다 물개 사건 등이다. 장 원장이 이들 판정에서 재판장 또는 재판관이었다. 그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한국이 이길 수 있는 길을 닦아 놓고 퇴임한 셈이다.
 
이제 일 수산물 건은 끝난 것인가.
“아니다. 1심에서 세계 원자력 전문가들이 후쿠시마 수산물에서 나온 방사능 표본 수치가 국제 허용 기준을 충족한다는 의견을 냈다. 상소기구는 1심이 전문가 의견에만 의지한 잘못을 이유로 1심 판정을 뒤집은 것이지, 그 의견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다. 그래서 일본이 ‘계속 수입금지 철폐를 요구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사실 이번에 한국이 이기기는 했지만, 수입금지조치에 대해 WTO가 면죄부를 손에 쥐어 준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
“1심 판정은 무효화 되어 일본 정부가 수입금지철폐를 요구할 법적 권리는 없다.  다만 한국 정부가 앞으로 이런 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번 상소기구가 제시한 법리를 잘 살펴 수입금지조치를 신중하게 운영해야 한다. 일본이 뒤끝이 있을 수 있다. WTO에 다시 제소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이번 상소기구가 제시한 법리를 반영해 다시 판단해 달라며 일본이 1심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사능 수치가 안전 기준 이내라는 사실과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위험요인까지 모두 감안해 다시 판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다만 분쟁절차를 밟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일본이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일본이 이번 2심 절차를 밟으면서 할 수도 있었다.”
 
무슨 말인가.
“일본은 이번 WTO 상소절차에서 1심 판정이 뒤집히면, 직접 상소기구가 옳은 법적 기준을 적용해 다시 위반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본의 법적 대응력 문제다.”
 
WTO 상소기구 재판관은 원래 7명이지만 현재는 3명뿐이다. 이들은 미국·중국·인도 출신이다. 다만 3명이 재판부를 이뤄 판정을 내린다. 판정을 내릴 때 필요한 최소 인원만 남아 있는 셈이다.
 
일본이 다시 제소하면 그들이 다시 한국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대비하냐에 달려 있다. 다만, 상소기구 남은 3명 가운데 미국과 인도 출신 2명의 임기가 올 12월 10일로 끝난다. 위원이 추가로 충원되지 않으면 WTO 체제의 핵심인 분쟁 조정 기능이 올스톱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후쿠시마 수산물 금지건을 다시 제소해 1심에서 이기더라도 한국이 상소하면 미결인 상태가 이어진다.”
 
왜 WTO 상소기구 재판관이 3명밖에 남지 않았는가.
“미국과 EU가 재판관 선임 절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미국이 재판관 임명절차 진행을 거부하고 있다. 관례상 WTO는 만장일치여서 미국이 반대하면 재판관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이 WTO 분쟁해결기구를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올 가을 미국이 자국 출신 후임을 낼까.
“지켜볼 일이다. 지명 여부에 따라 미국이 WTO 분쟁해결기구를 정말로 마비시키려 작정한 것인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교역국이다. 언제든지 무역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실제 일본 말고도 미국과 유럽연합(EU), 호주, 캐나다 등이 한국을 상대로 WTO에 제소해놓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 등을 상대로 여러 건을 제소한 상태다(그래픽 참조).
 
지금까지 한국은 무역분쟁을 협상으로 해결해온 듯하다.
“이번 사건은 무역 분쟁을 외교적 협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강대국을 상대로도 법적으로 따져 이길 것은 이겨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이 있다.”
 
 
변시 합격률 낮아 통상법 전문가 부족
 
무엇인가.
“통상법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이번 정부 분쟁대응팀이 수고를 많이 했지만, 통상교섭본부 등에 더 많은 통상법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뜻밖의 문턱 때문에 통상법 전문가가 충분히 길러지지 않고 있다.”
 
그 문턱이 무엇인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를 밑돌고 있다. 그 바람에 로스쿨 학생들이 시험과목 공부하는 데만 내몰리고 있다. 통상법 등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서 도입한 로스쿨 취지에 맞지 않은 일이다. 우선 이번 합격률부터 개선해야 한다.”
  
강남규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서울지방법원 판사(1988~91년)를 지낸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통상법으로 9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 국제중재법원, WTO 등에서 중재인으로 활동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통상법 전문가다.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