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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누워 있는 중증 장애인 “병원 가는 길이 천리길”

중앙선데이 2019.04.20 00:21 632호 10면 지면보기
장애인의 날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10년 넘게 간병해오고 있는 이모씨가 집에서 남편을 돌보고 있다. 24시간 누워 지내는 와상 환자에게도, 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에게도 지역사회의 돌봄 서비스 등 커뮤니티 케어가 절실하다. [중앙포토]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10년 넘게 간병해오고 있는 이모씨가 집에서 남편을 돌보고 있다. 24시간 누워 지내는 와상 환자에게도, 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에게도 지역사회의 돌봄 서비스 등 커뮤니티 케어가 절실하다. [중앙포토]

“병원에라도 좀 편하게 모셔갔으면 좋겠어요.”
 
강원도 춘천시 뇌졸중 환자 최씨(84)의 딸(50)이 유일하게 집밖을 나서 바깥 바람을 쐴 때는 병원 가는 날이다.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모친 최씨를 모시고 강원대병원까지 가는 길은 5㎞. 24시간 누워 생활하는 최씨를 모시려면 사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한다. 비용만 왕복 20만원이다. 병원비까지 합하면 한 번 병원 외출할 때 30만원이 훌쩍 나간다. 딸은 “비용이 들어도 그나마 환자를 이송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동안 근육이 빠지면서 혼자 힘으로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해 식사나 배설, 보행 등 일상생활능력을 상실한 와상 환자다. 이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있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다. 2017년 현재 장기요양등급 1·2등급을 받은 12만3235명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와상 노인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 노인은 2018년 기준으로 66만 3879명으로 추산된다. 2030년이면 두 배가 될 전망이다.
 
 
누워 사는 중증 장애인 12만여 명
 
병원은 이들에게 더 이상 처치해줄 게 없다면서 집으로 보내고, 보호자는 요양 병원을 구하지 못하면 집에서 간병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집으로 돌아가면, 병원에 가는 게 걱정이다.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이동 수단도 없다.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정씨(81)는 준와상 환자다. 심장 질환과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몸이 굳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힘이 든다. 정씨는 신장 질환을 앓고 있어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받아야 한다. 아내 조씨는 “병원까지 가는 길이 천리길 같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병원 가야지 어떡해, 남편이 아픈데….” 정씨가 방바닥에서 소파까지 오르고, 소파에서 다시 휠체어로 옮겨 타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린다. 다리 힘이 풀리는 정씨를 아내가 몸으로 밀어 붙여 가며 지탱한다. 간병 생활을 하는 1년 사이 아내의 체중은 10kg 넘게 빠졌다. 관절염 약도 먹지만 힘든 간병 때문인지 차도가 없다. 택시가 와 있는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데만 10분이 걸린다. 사정을 모르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늦으시냐”고 성화를 부릴 때마다 조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혹시 기사들이 먼저 가버릴까봐서다.
 
환자의 이동권은 곧 건강권과 연결된다. 입원하지는 못해도 긴급한 처치가 필요한 질병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씨의 경우는 활동보조사가 나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필요하다. 신장 질환에 걸려 투석을 받으면 3개월이 지난 후에야 장애 등급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꼭 필요한 치료를 위해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은 오로지 가정 보호자의 몫이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는 요양 등급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이미 설정된 예산에 따라 등급이 지정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요양 등급을 인정받더라도 병원에 필요한 만큼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씨보다 더 심각한 와상 환자는 택시도 이용하지 못한다. 취재 중 만난 한 와상 환자의 보호자는 “장애인 콜택시는 휠체어조차 탑승할 수 없는 와상 환자들에겐 허상과 같은 존재”라고 혀를 찼다. 현재 정부의 지원 정책은 휠체어 사용 가능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5월부터 시행하는 가정 환자 택시 지원 사업도 휠체어 탑승 시설 개조차를 이용한다. 와상 환자들은 탈 수 없다. 언제 낙상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와상 환자들은 사설 구급차를 이용한다. 심장마비 등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119도 사용할 수 없다. 특수 구급차의 경우 10㎞당 7만5000원. 이보다 먼 거리를 갈 경우에는 1㎞당 1300원이 추가된다. 와상 환자 이송을 위해서는 이를 지원해줘야 하나 노인 장기요양보험 급여 외의 지원책이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설 구급차 지원도 고려했으나, 이용 요금이 고가라 시범 사업에서는 추진이 어렵다”며 “본 사업 추진 시에는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어떤 환자들은 사설 구급차에게도 거절 당한다. 와상 환자 이씨(79)가 그런 경우다. 이씨의 보호자들은 “병원에 한 번 할머니를 모시고 나면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상남도 김해시 외동의 한 연립 주택 4층에 산다. 워낙 오래된 곳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편마비가 온 이씨는 몸을 가누기는커녕 정신 차리는 것도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사설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말에 대부분의 업체가 난색을 표했다. 당시 30분 가까이 전화를 돌려서야 한 업체가 간신히 왔다. 그 곤욕을 치른 후에는 가족끼리 옮기기로 했다. 2~3개월에 한 번씩 이 씨의 50대 아들이 환자를 업고, 뒤에서 딸과 손녀가 짐을 챙기며 이씨를 받쳐가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4층이나 되는 계단을 환자를 업고 오르락내리락하면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이씨 가족들은 “사설 구급차 업체들의 거절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와상 환자 41% “이동 지원해 줘야”
 
실제로 엘리베이터 없이 와상 환자를 운송해줄 수 있냐고 사설 구급차 업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이 너무 들어서…”하며 망설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업체 관계자는 “와상 환자들은 업어서 옮길 수가 없잖아요. 들 것으로 옮겨야 해요.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사고 날 위험도 커요. 힘들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20대 기자 걸음으로는 2분도 안되게 걸리는 계단이, 이씨의 거동을 막는 철창이다. 허승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노인 장기요양보험은 치료보다 가사활동 지원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라 노인을 병원에 모셔가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와상환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동권 보호가 우선이다. 병원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가정 환자가 가장 원하는 서비스를 조사했을 때 이동 지원이라고 답한 환자 비율이 41.3%였다.
 
영국·일본선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팀 이뤄 방문간호
일 방문간호 시설 1만 곳 넘는데
한국은 700곳 … 요양병원에 몰려
 
어느 나라나 24시간 누워 생활해야 하는 와상 환자는 있다. 영국·핀란드와 일본 등에선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팀을 이뤄 이들을 찾아간다. 지역사회가 나서서 방문 진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경우 히로시마현의 미츠기병원에선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등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환자를 방문한다. 환자의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통해 24시간 체제를 구축했다. 이렇게 ‘와상 제로 작전’을 펼친 결과 와상 환자가 최근 2년 사이에 절반으로 감소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런 식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 간호 스테이션은 일본 전국에 9735곳(2017년 기준)이며, 지난해 1만 개를 뛰어 넘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선 요양 보호사 혼자 가사 지원을 나가는 게 보통이다. 한국방문간호사회가 추정한 방문 간호 시설 수는 현재 700여 곳이다. 재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문간호시설의 수는 뚝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0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관련 시스템이 미비한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일본 등 선진국은 지역자치단체가 나서 복지·의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의사·간호사·요양사·재활사가 활발히 교류한다. 각 기관 간 연계도 잘 이뤄져 있다. 한국은 방문요양센터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나 다른 기관과 연계돼 있지 않다. 박영숙 한국방문간호사회장은 “90%가 넘는 방문 요양 기관이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정 간호가 쉽지 않으니 대부분의 환자는 요양 병원에 몰린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한국노년학회 회장)는 “한국의 복지는 주로 대상자가 직접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찾아가는 복지, 여쭤보는 복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정미리 인턴기자 jeong.miri@joongang.co.kr
 
강홍준 기자, 춘천·김해=정미리 인턴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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