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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어느 서울대생의 취업분투기

중앙선데이 2019.04.20 00:20 632호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다. 고용정책에 대해선 “일자리 사기극”이라고 했다. “세금으로 만든 단기 땜질용 일자리만 대폭 늘어나 대한민국이 알바천국이 됐다”면서다. 정치 공세라고만 볼 게 아니란 걸 최근 알았다. 서울대를 졸업한 A 청년이 학과 소식지에 쓴 취업분투기를 보고 나서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네 번 떨어진 끝에 취업했다고 했다. 서울대 인기 학과를 나와도 ‘4전5기’로 취업하는 현실이 청년실업의 단면도란 얘기다.
 
A가 졸업한 학과 교수는 더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 정도면 양호하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청년 실업의 실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상머리에 앉아 수치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잘 안다고 여긴 세상 물정을 실은 잘 몰랐다는 생각에 낭패감이 몰려왔다. 말로만 듣던 ‘문송(문과라서 죄송)’도 심각했다. 교수 말에 따르면 문과생들은 고시 공부나 공기업 시험 준비가 많다. 그런데 문은 좁다. 결국 상당수는 대기업·금융권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역시 바늘구멍이다.
 
더 놀라운 것은 A가 자신의 실패담을 담담히 풀어놓았다는 점이다. 서울대를 나와도 아무런 프리미엄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A는 “(낙방해보니)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솔직히 드러내는 게 합격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런 상전벽해가 있을 수 있나. 드라마 SKY캐슬처럼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것은 사회에서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 아닐까.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급격한 기술 변화와 이에 따른 인력 수요의 지각 변동이 근본 배경이다.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한 탓도 크다. 저성장 터널에 들어가면서 기업은 사람을 뽑지 않고, 나아가 국내 사업장을 중국·베트남·멕시코 같은 신흥국은 물론이고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결과는 ‘일자리 수출’과 ‘제조업 공동화’다. 군산·거제·창원·울산 등 지방 산업단지가 줄줄이 러스트 벨트로 전락하는 것은 그 흔적이자 증거일 뿐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경제가 제조업을 넘어 고급 서비스업으로 확장돼야 한다. 하지만 재벌이라는 이유로 발목이 잡히고, 중소기업은 자금력과 기술이 없어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못한다.
 
이 암담한 현실은 보수의 아이콘인 박정희 시대에 태어난 낡은 규제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칭 진보 정권은 규제를 풀면 재벌만 좋아지는 일이라면서 그럴 생각이 없다. 그 결과가 ‘고용 불임국가’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5%를 넘어섰다. 취업은커녕 알바·인턴 자리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대학생들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기에 열중해 졸업을 미루며 청춘을 보낸다. 지금이라도 청년을 실업의 덫에서 풀어줘야 한다.
 
해법은 자명하다. 기업 옥죄기를 중단하면 금세 분위기가 달라진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의 과실을 따 먹었던 집권 586세대는 청년의 고통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직장을 골라잡을 수 있던 기억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규제 완화 같은 해결책은 놔두고 8만명에게 청년 구직수당(월 50만원)을 뿌리는 포퓰리즘을 앞세운다.
 
청년들은 슬슬 분노하고 있다. 청년 시민단체 ‘자유로정렬’은 잇따라 집회를 열어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제2의 촛불을 들자”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준비된 일자리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칭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기업 경제를 악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청년을 실업자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알바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이 이들을 문 정부의 반항아로 내몰고 있다. 일자리 사기극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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