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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 유지 신물 난 미국, 한국서 한발 뺄 수도 있다

중앙선데이 2019.04.20 00:02 632호 8면 지면보기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쓴 피터 자이한
2017년 미국령 괌에서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연합훈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2017년 미국령 괌에서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연합훈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한국은 한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다.”
 
최근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중에 이런 주장을 담은 책이 있다. 미국 국무부를 거쳐 민간 정보기업 ‘스트랫포’ 부사장을 지낸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이 쓴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다.
 
피터 자이한

피터 자이한

자이한은 책에서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을 이룬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신물이 나, 손을 떼고 있고 ▶이로 인해 유럽·중동·동북아에서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며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과 원자재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은 중국·일본 사이에 끼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동북아 국가 중 경제·인구구조·군사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도 했다.
 
논쟁적인 주장이다. 동시에 충격적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보수 진영엔 말이다. 그래선지 보수 인사 중에 주변에 일독(一讀)을 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책엔 그러나 조언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다. 저자 스스로 한국어판 서문에 “해법은 고사하고 한국에 헛된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지난달 말 미국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건 까닭이다. 그는 몇 가지 제안을 했다. 한국엔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일본이 한국보다 동맹으로서 옵션 많아
 
2017년 7월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앞에 내걸린 기지 이전 환영 플래카드. [오종택 기자]

2017년 7월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앞에 내걸린 기지 이전 환영 플래카드. [오종택 기자]

미국이 세계서 발을 빼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가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이는, 특정 지역에서 서서히 관심을 잃어가는 현상으로 상대적으로 저속이다. 뚜렷해지는 데 10년 또는 20년까지 걸릴 수 있다. 미국인들이 의식한 채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뭔가 미국인의 심리를 자극하는 게 있는 경우 순식간에 발을 뺄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불개입 결정이 그 예다. 한국이 급격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한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이 가능한 개입하도록 비상한 노력을 하고 있고 지금까진 그게 통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한·미 간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걸 두고 부분철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더라. 전면철수도 가능하다고 보나.
“임박한 건 아니다. 현재 미국의 누구도 (전면철수란)그 옵션을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그게 최종 결과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카터 행정부 이래 한국에의 안보 공약(commitment)에 대해 덜 열렬해지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유일한 전략적 목적은 남한의 방어다. 추가적 이득은 없다. 한·미 양자 관계에 혹은 북한에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에 따라 미군도 진화하게 된다. 워싱턴과 평양 간 적대적 관계가 재연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일 문을 닫는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test of time) 주둔할 것 같지 않다. 사실 이렇게까지 있던 게 놀랍다. 다른 곳은 모두 닫았다.”
 
주일미군은 어떻게 보나.
“일본은 한국보다 동맹으로서 전략적 유연성이 훨씬 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우리는 필리핀과 얽히고 싶지 않은데 당신들은 어떤가. 필리핀에 개입할 수 있나’라고 말을 건넬 수 있다. 일본은 그럴 힘도, 옵션도 있다. 일본의 능력에 대해 미국은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이런 점이 한국엔 일련의 복잡미묘함을 야기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엔 한국이 미국의 친구로 남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는데.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완전히 에너지를 자급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상당수 산업이 생산 라인을 다시 미국으로 옮기고 공급 체인을 단순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캐나다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본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 대체할 대규모 전기화·원자력화 필요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의 셰일 생산 기지. [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의 셰일 생산 기지. [AFP=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에 지속해서 관여하게 하려면.
“많은 나라가 그 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마도 가장 근접한 답을 얻었다면 호주일 게다. 알다시피 호주는 누구나 사랑한다. 미국이 계속 관여하게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 위협이 아니란 걸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 교역에서 많은 걸 양보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둘째 미국이 한국 내 기지를 이용, 동북아시아에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용인해야 한다. 일본 오키나와와 비슷한 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중 간 교역 관계는 희생할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어려운 주문(tall order)이긴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력 투사를 위한 플랫폼의 지지자(cheer leader)가 될 필요가 있다. 대만의 독립 인정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교황보다 더 가톨릭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more catholic than the pope·강력한 옹호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
 
우리로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더욱이 그리했는데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중 관계가 어려워졌는데도 미국인을 불러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
 
그는 미국이 세계질서에서 철수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말했다. 페르시아만 등의 정세 불안으로 석유 공급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일본·대만이 석유 수입 확보를 위해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이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취약한 중국이 경제적·정치적 응집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한국은, 바닷길을 확보할 역량이 되는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새 파트너로서 유일한 옵션은 일본”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를 잘 알 터인데.
“(양국 간) 반목과 역사, 문화를 고려치 않은 조언이란 걸 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일본이 ‘똑똑한 선택(smart choice)’이다. 물론 용이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든 저렇든 한국은 변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 시간이 있을까다. 내가 보기엔 10년 이내라고 본다. 5년에 가까울 수도 있다.”
 
독자적인 길은 없을까.
“세 가지 큰 변화가 요구된다. 첫째 석유 없이 지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대규모의 전기화·원자력화가 필요하다. 원유보다는 해외공급망을 관리하기 훨씬 용이할 것이다. 둘째 국내총생산(GDP)의 대략 5%(현재 2.5%, 한국군 주도할 땐 5%)를 비무장지대(DMZ) 방어에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북한과 잘 지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돈을 해군력을 키우는 데 투입해야 한다. 셋째 사회·문화적 변화다. 한국 국내적으로 상당한 정치 논쟁이 있다. 비교적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선 정상적인 진화단계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잘못된 것들을 놓고 싸운다. 세계에서 한국의 위치(South Korea's place in the world)나 한국이 어떤 종류의 국가가 되어야 할지를 두고 국가적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 탓에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을 맞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떤 선택에 도달했을 때, 다수가 함께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원치 않는 선택 강요받기 전 먼저 변해야
 
북핵 위기 와중이던 2017년 남한의 미래가 ‘가난하고 친구 없고 지독히도 영리하고 화를 잘 내는(testy) 핵무장 국가’일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흥미를 잃고 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행간을 읽으면 북한이 서반구를 공격할 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핵 국가로 남는다는 것이다. 핵 문제는 일본과 중국, 한국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아마 최종적으로 그리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을 군사적·외교적으로 다루는 건 남한이 될 수 있다. 전쟁으로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4500만 명의 남한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인 데 비해 북한의 2000만 명은 정반대에 있다. 남북의 파트너십은 대단히 파워풀할 것이다. 이는 그러나 상당한 개입(engagement)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한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비전을 가진 채 존재하길 바란다면 앞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11일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그에게 다시 e메일을 보냈다. 미국은 빅딜 기조를 유지하고, 북한은 한국의 중재자 역할에 냉소적인 것으로 확인돼서다.
 
최근 북·미 반응을 보면 제재 위반의 의혹을 사지 않으면서 남북이 잘 지내는 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길엔 위험이 따른다. 한국이 세계 시장에의 접근을 유지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 선에서 북한과의 외교적 접근을 이뤄내야 한다. 일단 그런 희망이 흐려진다면 보다 광범위한 선택지가 드러날 것이다, 각각 위험이 있는.”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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