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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상근예비역 뺑소니에 의식 없는 50대 신문배달원

중앙일보 2019.04.18 05:00
지난 1월 상근예비역 정모(22)씨가 몰던 뺑소니차에 치여 의식을 잃은 김모(56)씨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사진 김씨 가족]

지난 1월 상근예비역 정모(22)씨가 몰던 뺑소니차에 치여 의식을 잃은 김모(56)씨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사진 김씨 가족]

20년 넘게 밤공기를 가르며 신문을 배달해 온 김모(56)씨는 하루아침에 불구가 됐다. 뺑소니차에 치었기 때문이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지만, 김씨는 넉 달째 혼수 상태다. 달아난 운전자는 붙잡혔지만, 김씨가 누워 있는 중환자실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올해 1월 사고 후 넉 달째 혼수 상태
운전자 잡고 보니 20대 현역 군인
군사법원 "도주 우려 없다" 영장 기각
지난달 전역…檢 "죄 무겁다" 구속기소

사건은 지난 1월 10일 자정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오토바이에 탄 채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아침에 배달할 신문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김씨가 탄 오토바이를 덮쳤다.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간 김씨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승용차 운전자는 그대로 달아났다.  
 
이 사고로 머리 등을 크게 다친 김씨는 뇌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지는 마비되고, 몸은 굳고 있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도주 차량을 추적해 사고 이튿날 운전자를 붙잡았다. 조사 결과 상근예비역 정모(22)씨였다. 상근예비역은 기초군사교육만 마친 뒤 집에서 출·퇴근하며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사병을 말한다. 정씨가 사고 당시 몰던 승용차는 렌터카였다. 그는 렌터카를 빌려 소속 부대인 35사단이 있는 임실과 전주 집을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뺑소니 사고로 넉 달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모(56)씨의 병원 소견서. [사진 김씨 가족]

뺑소니 사고로 넉 달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김모(56)씨의 병원 소견서. [사진 김씨 가족]

현역 군인 신분을 확인한 경찰은 정씨 신병을 35사단 헌병대에 넘겼다. 헌병대는 정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상급 부대인 제2작전사령부 군사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초 정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한 채 차를 몰다 사고를 냈는데,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음주 운전 사실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 수사 당국은 불구속 상태에서 정씨를 조사하다가 지난달 초 그가 전역하자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전주지검은 1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도주치상 혐의로 정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안이 무겁고 피해 회복 노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구속했다. 여기에는 검찰시민위원회의 판단도 반영됐다. 시민위원 9명은 만장일치로 "정씨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검찰은 정씨가 음주 운전을 했을 것으로 봤지만, 시일이 너무 지나 음주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다.
 
김씨의 둘째 형 태형(59)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가해자(정씨)는 음주 사실도 부인하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사과하거나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반성의 기미도 없으니 다친 동생만 억울할 뿐"이라며 법원에 엄벌을 촉구했다. 4남 2녀의 막내인 김씨는 아직 미혼이다.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둘째 형 가족과 함께 살았다. 태형씨는 "가해자 부모가 사고 후 두 달쯤 뒤 전화로 '합의하자'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라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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