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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뉴욕의 베슬, 서울의 쌀집

중앙일보 2019.04.18 00:13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도시 재생은 스토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스토리는 노포(老鋪)와 쌀집·이발관·전파상인듯한데, 아무래도 이것들로는 부족해 보인다. 서울처럼 더 퍼져나갈 수 없는 큰 도시는 올라갈 줄도 알아야 한다. 때론 세상에 없던 초고층 건축, ‘첨단 기술 스토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 시장은 ‘높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지난 8일 재건축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강남주민들의 요구에 “(내가) 피를 흘리고 서 있는 게 안 보이느냐”며 “이것이 서울의 미래인가”라고 되물었다. 그가 꿈꾸는 서울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 이달 초 문을 연 돈의문 박물관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울시는 재개발로 헐릴 예정이던 돈의문 일대 집 40채를 사들인 뒤 16채를 마을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사진관·이용원·오락실·만화방을 재현했다. 그래놓고 “재생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마을”이라고 설명했다. 내게는 살 곳이라기보다는 적당한 퇴행의 감성으로 얼버무린 전시물처럼 보였는데, 이게 서울의 미래일 수는 없다.
 

500년 넘은 도시 서울의 미래
쌀집·이발소·만화방으론 안돼
뉴욕의 도시 재생에서 배워야

이달 초 들른 ‘뉴욕의 미래’ 허드슨 야드와 견주면 더 분명해진다. 뉴욕시는 2005년부터 맨해튼 철도차량 기지를 250억 달러를 들여 재개발하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년. 민간 개발로는 역대 최대다. 2025년까지 16개 타워형 빌딩에 초고층 아파트·사무실·쇼핑센터·공연장·호텔이 들어선다. 지난달 1단계 시설이 공개됐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시형 등산빌딩 베슬(Vessel)은 단번에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개발사인 릴레이티드 측은 “세상에 없던 명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허드슨 야드의 성공은 서울 용산 개발과 대비된다. 면적·시기·장소(철도차량기지)까지 비슷했는데, 단군 이래 최대 민간 개발 사업이라던 용산 재생은 왜 실패했을까. 이현석 교수(건국대 부동산학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강한 리더십이 없었다. 10년 이상 걸리는 대형 개발은 돌발 변수가 많다. 그럴수록 (투자자 중) 강력한 리더가 꼭 필요하다. 둘째, 공공과 민간이 따로 놀았다. 서울시·코레일·국토부는 혹여 ‘친재벌’로 비칠 수 있다며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셋째, 단기 자금 회수에 급급했다. 코레일은 땅을 팔아 빨리 흑자를 내려 했고, 이게 민간엔 자금 압박으로 이어졌다. 반면 허드슨 야드는 완공 후 들어올 재산세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10~20년 장기 회수했다. 세금 걷을 권한을 개발자 측에 넘겨주는 조세금융담보(TIF) 방식이다. 한국에선 정치적 이유로 꿈도 꾸기 어렵다.
 
나는 허드슨 야드의 성공 비결로 한 가지를 더 꼽고 싶다. 하이라인 파크다. 녹슨 철길을 되살린 하이라인 파크야말로 도시 재생의 살아있는 신화다. 불가능한 꿈을 꾼 두 젊은이, 프리랜서 기고가 조슈아 데이비드와 창업 컨설턴트 로버트 해먼드가 아이디어를 내고 사람을 모았다. 개발업자와의 지루한 소송과 갈등, 그것을 이겨낸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지원 사격, 도시계획 책임자 어맨다 버든의 집념이 어우러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냈다.
 
하이라인의 성공이 없었다면 허드슨 야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허드슨 야드를 “0.1%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대형 오피스 공원”이라고 비판한다. 허드슨 야드는 웨스트 34번가에서 하이라인과 서로 만난다. 허드슨 야드가 개발·높이·첨단·자본의 상징이라면 하이라인은 보존·바닥·전통·주민을 대변한다. 둘이 어우러져 질시와 갈등을 딛고 뉴욕 도시 재생의 신화를 완성했다. “성공적인 도시는 파티와 같다”며 “볼거리·놀거리·먹거리를 통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던 어맨다 버든의 말 그대로다.
 
박원순 시장은 2014년 하이라인 파크를 둘러보고 서울역 고가 공원 ‘서울로’를 구상했다. 하지만 흉내만 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엔 허드슨 야드를 보고 좌초했던 용산의 재생을 꿈꿔보기 바란다. 주민도 만족하고 피도 안 흘릴 묘안이 떠오를지 누가 알겠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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