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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엘리트 외교관의 사표

중앙일보 2019.04.18 00:13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네 스타일이 최고야.” 그러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엄지 척을 해 보였다나, 2011년 청와대 행정관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정작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 통역을 맡은 외교관이었다. 오바마에게 “오늘 차림이 멋있다”고 하자 오바마가 보인 반응이라고 했다.
 
이 목격담을 떠올린 건 그 외교관이 최근 사표를 냈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기업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외교부 본부 핵심 지역국 과장이었다. 이전엔 외교관으로 이례적으로 대통령 세 명(김대중·노무현·이명박)의 통역을 담당했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DJ의 통역을 하다 외교부에 특채될 무렵 함께 일한 시기도 있었다. 몇 명을 돌려세웠던 MB가 그를 만나보곤 OK 했다던가. 본인은 대통령의 통역으로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외교관이란 본질 대신 말이다. 실제 지난 정부에선 핵심 지역인 워싱턴에서 근무했었다.
 
이러나저러나 한창 일할 시기인데 그만두다니, 놀랐다. 그는 주변에 “외교부에서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보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민간에서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심일 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렇게만 받아들이기엔 흔쾌하지 않은 외적 조건들도 보인다. 지난 정부 당시 워싱턴에서 일했던 외교관들은 “사실상 한두 명을 빼곤 모두 외교부를 떠났거나 외교부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상태가 이어진다.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대미(對美)·대일 외교 실패란 거센 비판에도 일 잘한다는 외교관들의 소외는 여전하다. 장관은 이름뿐, 리더십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역량의 최대치를 뽑아내야 할 판에 뉜들 열정과 포부를 갖고 일할 수 있겠나 싶다. 그의 사표 소식이 씁쓸한 까닭이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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