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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느린 정부가 신기술 발목, 미래 안 보인다

중앙일보 2019.04.18 00:06 종합 5면 지면보기
불안한 대한민국 ② 
지난해 1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는 대대적인 규제책을 내놨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거래소 폐쇄가 목표”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 곧바로 청와대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혁신성장’을 내세우던 정부는 비트코인 투자 열풍은 우려했지만 암호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혁신성장과 관련해선 아직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6개월간 온라인상에서 가장 많이 화제가 된 경제 이슈는 ‘비트코인 규제 논란’이었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이 빅데이터 전문업체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빅데이터 1억2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비트코인 규제 관련 이슈의 언급량은 총 80만 건으로 2위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34만 건)보다 2배 이상이었다.
 
[그래픽=김주원·심정보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심정보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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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언급이 많았던 이슈는 트럼프발 무역전쟁(33만 건), 최저임금 인상(24만 건), 카카오뱅크 출범(17만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착수(15만 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11만 건), 국민연금 논란(11만 건) 등이었다. 연구원은 이런 이슈를 촉발한 원인으로는 정부(공권력)에 대한 불신(22.3%), 국제갈등(17.4%), 주거불안(16.4%), 경제적 외교 문제(12.7%), 고용불안(9.7%) 등을 꼽았다.
 
김광두 교수는 “경제 분야 빅데이터 분석 결과 저성장과 주거·고용 불안 등 안정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며 “더 큰 문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빅데이터를 보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은데 정부가 변화를 제때 따라가지 못해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정부·여당이 중재한 카카오와 택시업계의 ‘대타협’을 두고 “한국의 모빌리티 플랫폼 산업을 과거로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O2O·모빌리티·핀테크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 나온 박재욱 VCNC(‘타다’ 서비스 회사) 대표는 “우버의 진출을 막아 (모빌리티) 플랫폼 출시가 5년 늦어졌고, 이번에 또다시 플랫폼 육성이 5년 더 늦어졌다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에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공유 서비스 ‘그랩’ 앱은 스마트폰 하나로 일반 승용차와 택시·오토바이 등을 부를 수 있다. [사진 그랩]

동남아에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공유 서비스 ‘그랩’ 앱은 스마트폰 하나로 일반 승용차와 택시·오토바이 등을 부를 수 있다. [사진 그랩]

사실 외국에서는 ‘우버’와 ‘그랩’ 등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 같은 ‘기술 혁신’이 적용되기 어렵다. 2013년 한국에 진출했던 우버는 규제에 가로막혀 2년 만에 철수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엔지니어 모임인 K그룹 의장을 지낸 윤종영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지만 유니콘 기업(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친 규제와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불일치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 큰 논쟁이 벌어진 것”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창조’ ‘혁신’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규제완화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혁신 산업이 몇 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번 빅데이터 조사를 통해 경제 이슈 뒤에 숨은 키워드를 분석해 보니 민생안정(47.5%), 신뢰(22.6%), 안전(12.8%) 등의 가치가 핵심으로 꼽혔다. 이종화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미래를 어둡게 느껴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청년들이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일자리에만 몰리고 있다”며 “이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호 전 연세대(경제학) 특임교수는 “혁신은 기존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고, 그 과정에선 자연히 과거의 방식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피해를 본다”며  “이런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혁신 없는 혁신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풀앱의 경우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소비자 편의를 증대시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정치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이라며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종영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지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윤 교수는 “정부가 ‘예산 퍼주기식’으로 산업을 육성하면 시장경쟁력보다 정부사업 수주에 올인하는 스타트업을 양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부 주도로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니 관련 없던 사람들도 블록체인이라고 이름을 붙여 정책사업에 뛰어든다”며 “정부의 지나친 개입보다는 규제를 풀어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를 통해 어떤 이슈가 화제가 됐고,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이슈에 관한 키워드 속에 담긴 시대정신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인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1년6개월간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780개 이슈를 선정했고, 총 1억1957만여 개의 반응이나 언급을 분석했다. 사회·정치·경제별로 화제성과 중요도가 높은 이슈를 정해 각 이슈에 관한 시민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를 추출했다. 또 이번 조사에선 2015년 상반기~2016년 상반기 1년6개월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시대정신의 변화상도 확인했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이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 특별취재팀=윤석만·남윤서·전민희 기자, 김혁준 인턴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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