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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컵 던지고 소리 질렀다고 기업 치나" 조양호 상가 가보니

중앙일보 2019.04.18 00:05 종합 26면 지면보기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고 조양호 회장 빈소 겉으론 차분했지만 
지난 16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운구차량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공항동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장지인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에 안장됐다. [뉴스1]

지난 16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운구차량이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공항동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장지인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에 안장됐다. [뉴스1]

또 장례식장에 갔다. 죽음을 기사로 다루는 건 문재인 정부 들어 세번째다. 2017년 변창훈 부장검사의 납골당을 찾았고 2018년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에 이어 이번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상가에 앉았다. 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혹독한 수사를 받던 도중이었다.  ‘적폐’ 프레임에 갇힌 검사와 군인은 몸을 던져 영혼의 자유를 취했다. 대기업 회장은 공식적으론 ‘병사’였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국가권력 오·남용에 따른 죽음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딸들과 아내의 언행에 11개 권력기관이 수사·조사에 나서고 개인을 넘어 기업 문제로 수사를 확대하더니 급기야 국민연금공단의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으로 경영에서 배제됐다. 그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에 탈락한지 10일만의 죽음, 그 속을 들여다봤다.
 
 지난 1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빈소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판        조강수 기자

지난 1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빈소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판 조강수 기자

 
장례 이틀째인 지난 13일 오후 6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양주 조씨인 조양호 회장의 빈소에선 고인에게 식사를 올리는 ‘상식’이 진행중이었다. 제삿상에 밥과 국,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절차다. 부인 이명희씨는 보이지 않고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전무가 참석했다. 나라를 뒤흔든 여러 사건의 진원점이라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망자를 위한 곡소리와 권력에 대한 원망의 장탄식이 한데 뒤섞여 시끄러우리라고 본 예상은 빗나갔다. 상갓집 분위기도 특실 1호와 일반실 12호를 터서 널찍하다는 것과 화환이 즐비한 것을 빼고는 여느 상가와 차이가 없었다. 장례식장에는 죽음보다 삶이 더 많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아버지의 죽음 곁에서 자녀들의 삶이, 인연과 관계가 존재의 춤을 췄다.
 
어느 순간, 앞 쪽 테이블에 검은 상복을 입은 조현민, 뒷쪽 테이블에 상주 조원태, 대각선 쪽 테이블에 흰 소복의 조현아가 동시에 자리했다. 이들 중 한명이 일어설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키가 너무 커서 잠시 ‘장신의 숲’에 온 것은 아닌가 착각에 빠졌다. 기내식 담당 임직원 등을 맞은 조현아가 일어서자 일행 중 한명이 “언니,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조현아가 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취재차였지만 얼떨결에 조문도 했다. 상주에게 “심려가 많겠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상주가 무슨 말을 할까 싶었다. 얼핏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상가 체류 시간이 길어지자 대한항공 사람들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고인에 대한 회고부터 시작했다.  “회장님이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다. 항공사 특성상 전자메일 결재 시스템이 일찍 도입됐다. 한번은 토요일 새벽 4시쯤에 보고 메일을 보냈는데 30분 만에 답장이 와서 깜짝 놀랐다. 그 시각에 깨어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다.”(A임원)
 
“조 회장의 생애는 딱 세 가지 단어로 압축된다. 가족과 회사, 효도다. 술 한잔 안 하고, 담배 한개비 안 피웠다. 양복, 넥타이도 20~30년 된 것 그대로 썼다. 구두도 닳은 것 신었다. 검소했다. 직원들에게 엄격했는데 정비사보다 정비를 더 많이 알고 비행기도 직접 몬다. 정경유착도 없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 때는 최순실 눈 밖에 나서 졸지에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내쳐지고 이번 정부에선 기업 회장직에서 떨려난 것 아닐까.”(B임원)
 
자연스레 수사 오·남용 문제로 옮겨갔다. “죄형 법정주의? 죄에 맞는 형벌을 내려야 승복하지. 물컵 사건 이후 경찰 광역수사대가 조 전 전무의 특수폭행, 업무방해, 관세법 위반 등을 조사했지만 무혐의(공소권 없음)로 종결됐다. 별건, 별건, 별건 수사가 이어졌다. 가족 중 아무도 구속이 안되자 가장을 기업에서 끌어내린 셈 아닌가. 기네스북에 오를 얘기다. 물컵 던지고 경영권 뺏겼다. 회사는 13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냈는데. 수사가 진행된 1년 6개월여 간 조 회장은 몸무게가 12㎏이 빠져 맞는 옷이 없더라. 얼굴은 폭삭 늙어버렸다. ”
 지난 13일 조양호 상가 풍경. 문상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벽면 가운데 조 회장의 생애를 정리한 영상이 계속 리플리이되고 있었다.                          조강수 기자

지난 13일 조양호 상가 풍경. 문상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벽면 가운데 조 회장의 생애를 정리한 영상이 계속 리플리이되고 있었다. 조강수 기자

 
국민연금의 사내이사 선임 부결은 어떻게 보나.
“1997년 금융 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경영권이 투기 자본에 넘어갈 우려가 생겼다. 그걸 막으려고 99년 정관을 개정해 사내 이사 선임은 특별 결의(전체 주주의 3분의 1 출석에 3분의 2 찬성)에 의하도록 규정했다. 이번에 64%로 2% 부족해서 부결됐다. 20년만에 역풍 맞은 격이다. 특히 ‘대기업 대주주의 위·탈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지난 1월 대통령이 경고한 이후 국민연금이 움직였다. 이게 정치권 기웃거리지 않고 경영에만 신경 쓴 대가라면 억울하지 않겠나.”
 
한진가(家)의 법률대리는 법무법인 광장이 맡고 있다. 20여명의 민·형사, 행정 사건 전문 변호사들이 방패로 투입됐다. 상가를 찾은 변호사 중 지인을 만났다.
 
유족들 심경은.
“조원태 사장이 첫날 문상 온 변호인단에 두 가지를 부탁드렸다. 회사를 지켜달라는 것과 회장님(부친 조양호)의 명예 회복이었다. 첫째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닥친 위기 상황에서 방어를 잘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내년 주주총회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다. 둘째는 조 회장의 공범으로 한진의 계열사인 정석기업 원종승 대표 등이 불구속기소된 사건들에서 무죄를 위해 힘써달라는 거였다.”
 
재판이 다 끝난 것 아닌가.
“조 회장 본인 사건들은 사망에 따른 공소 기각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공범이 기소된 사건은 거액의 횡령·배임과 피해액 반환, 약사법 위반과 부당이득금 반환 등의 민·형사소송이 다 걸려 있다. 큰 건만 대여섯이다. 우리는 공범의 무죄를 받아야 한다. 지면 채무가 상속이 되니까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 형사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조 회장의 명예 회복이 가능하다. 이전(※조 회장 생전)에는 여론 재판의 우려가 컸지만 이제는 증거 재판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조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영향을 끼친 요인을 꼽는다면.
“무리한 수사와 정부의 갑질이 아닐까. 조 전 전무가 물컵 던진 것 물론 잘못했다. 이명희 여사가 소리 지른 것 잘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개인의 잘못을 갖고 기업을 치나. 대책회의 때 조 회장은 ‘죄를 억지로 만든다’고 억울해 했다. 무슨 약국을 동업했다고 하질 않나. 아들의 인하대 편입학 건으로는 교육부까지 나섰다. 개인비리인데 기업 비리 수사로 확대하다보니 무리한 수사, 무리한 영장청구가 되고 법원에서 기각되고 당하는 사람들은 황당하고 그러니깐 또 몸이 아프고.”
 
마지막 바람은 뭐였나.
“자신이 유치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를 성공리에 마쳐 국내 항공산업의 위상을 정립하는 걸 마지막 소명으로 알고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오는 6월초 열리는 IATA 총회는 항공업계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항공회사 CEO라야 의장이 된다. 사내이사 연임 불발로 그게 물건너갔다. 폐가 하얗게 변하면서 기능이 저하되는 폐섬유증이 지난해 11, 12월 악화돼 간이 호흡기를 착용했다. 다행히 올해 1월께 미국에서 한 수술이 성공적이었다. 상태가 호전됐고 완쾌됐다고 봤는데 느닷없이 비보가 날아들었다.”
 
상가 한켠에서 한진의 상황을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공중분해된 국제그룹에 비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긴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있다. ‘권력 개입’의 부작용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공화국의 부실기업 정리를 비판하며 이런 말을 했다. “국제그룹 정도 규모의 기업을 정리하려면 먼저 객관적인 분석이 있어야 했다. 경제정책가들은 그런 일을 다시는 해서는 안될 것이고 경제계도 다시 그렇게 당해서는 안된다.”
 
수사기관과 정부의 압박은 기업을 힘들게 한다. 아마추어 복서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두들겨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상가를 나오며 든 생각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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