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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싶니?" 묻자 울음 터뜨린 열세살 과테말라 소년

중앙일보 2019.04.17 08:00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4)
지난달 과테말라 비전트립에서 만난 13살 윌슨이 자신의 학비를 후원해주기로 약속한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윌슨은 7남매를 키우는 싱글맘 엄마가 일을 나간 동안 4개월 된 쌍둥이 여동생을 혼자 보살핀다. [사진 한국컴패션]

지난달 과테말라 비전트립에서 만난 13살 윌슨이 자신의 학비를 후원해주기로 약속한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윌슨은 7남매를 키우는 싱글맘 엄마가 일을 나간 동안 4개월 된 쌍둥이 여동생을 혼자 보살핀다. [사진 한국컴패션]

 

“쌍둥이를 출산한 날, 한 아기를 입양 보내면 6만 케찰(한화 약 9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라 정말 많이 망설여졌죠. 하지만 거절했어요. 힘들어도 가족이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첫 남편과의 자녀 3명,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4명, 총 7명의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어요. 그중 둘째 아이가 4개월 된 쌍둥이 동생을 전적으로 돌보고 있고요.”

 
지난달 23일 과테말라 비전트립 마지막 날, 어린이센터 선생님으로부터 우리가 방문할 후원 어린이 가정의 엄마가 보낸 메모를 한 장 받았다. 혼자 7남매를 키우는 싱글맘 율리베스(Yulibeth)가 보낸 것이었다. 이 집에선 막내 쌍둥이 자매만 태아·영아생존 후원을 받고 있었다.
 
율리베스의 가족은 낡은 흙벽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가족이 예전에 살던 곳은 나무로 된 집이었는데, 워낙 오래된 탓에 벽에 구멍이 많아 딸들이 목욕할 때마다 동네 남자들이 엿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6명의 딸을 성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경제적인 부담을 각오하고 흙벽 집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과테말라에서는 여자아이들이 10대부터 성폭행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아이 엄마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나마 다행으로 월 470케찰(약 7만 원)의 월세는 떠난 두 번째 남편이 부담해줘서 엄마와 맏딸(19세)은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엄마와 누나가 일하는 동안 4개월 된 쌍둥이를 포함해 5명의 여동생을 돌보는 것은 오롯이 13살 외아들 윌슨(Willson)의 몫이었다. 우리와 동행한 어린이센터 선생님은 “윌슨이 성실하게 동생들을 돌보며, 혼자 센터까지 걸어와 쌍둥이의 영양제를 받아 갈 뿐 아니라 시간 맞춰 이유식까지 만들어 먹인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각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는 가난의 무게가 느껴져서일까. 엄마 옆에서 가만히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윌슨의 작은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이 가난 속에서 윌슨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난이 대물림될 것이 분명한 윌슨의 안타까운 모습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가족의 형편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 후원자가 “더 이상 자녀는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엄마는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7명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로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윌슨 가정을 방문한 한국 후원자들과 윌슨 가족이 함께 컴패션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윌슨 가정을 방문한 한국 후원자들과 윌슨 가족이 함께 컴패션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한국컴패션]

 
센터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엄마는 작년에 자궁암 수술을 해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가 간단한 소독 등을 도와줬지만 이제는 그 수준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엄마가 건강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예전보다 더 커지고 있었다.
 
센터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가 윌슨에게 말했다. “윌슨, 공부하고 싶니?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대학까지 후원해줄게. 동생들 잘 돌보고 센터 수업에 열심히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자. 여동생들도 센터에서 양육 받을 수 있도록 할게. 그리고 어머니 약물치료도 한국에서 후원할게. 걱정하지 마.”
 
스페인어 통역이 끝나자마자 윌슨의 큰 눈망울에서 폭포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윌슨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서 대표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이 어린아이에게 가난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엄마 없이 혼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느껴졌다.
 
윌슨의 눈물에 우리 모두 오열했다. 그 자리에 동행한 2명의 후원자는 4개월 쌍둥이와 3살 여동생의 후원을 약속했다. 율리베스는 윌슨을 끌어안고 울면서 후원자들을 향해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광경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쉽게 잊히지 않았다. 가난과 싸우면서 7명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은 싱글맘과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작은 어깨에 큰 짐을 지고 살던 13살 아들. 그리고 윌슨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소유 일부를 내어 주기로 약속한 후원자들.
 
윌슨 가족과의 만남은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사회가 정한 정상(正常)의 테두리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편견과 그로 인한 사회적 · 경제적 문제를 떠안아야 하는 현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어른과 돌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다.
 
힘겨운 세상의 파고를 혼자 넘어야 하는 것만큼 큰 불행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타인의 아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공감해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홀로 걷는 사람 옆에서 조용히 등불을 들어줄 때, 우리는 그 터널을 함께 통과할 수 있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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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필진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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