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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3D 프린팅 안경 만든 회계사… "다음 목표는 인공지능 안경 추천"

중앙일보 2019.04.17 06:55
“자, 여기를 보세요.”  
 
서울 역삼동의 3D 프린팅 안경 매장 브리즘. 테이블 위에 세워진 태블릿 PC를 쳐다보면 화면에 얼굴 윤곽이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촘촘한 점과 선으로 연결된 윤곽 아래엔 여러 숫자들이 함께 제시됐다. “얼굴 너비와 눈동사 사이의 너비, 코기둥 너비와 콧등 높이 같은 19가지 사이즈를 측정합니다. 안경 도면을 뽑기 위해 필요한 수치죠.”  
 
수치 측정이 끝나면 안경 제작이 시작된다. 얼굴 사이즈에 맞게 안경 도면을 설계한 뒤 3D 프린터로 뽑아낸다. 표면을 연마하고 고객이 고른 컬러를 입히면 맞춤 안경 제작은 끝. 보통 2주 남짓 걸리는 작업이다. 
 

“안경은 하루 종일 끼는 거니까 얼굴에 잘 맞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얼굴이 넓건 좁건, 입체적이건 평면적이건 같은 안경테를 조정해 써 왔잖아요. 3D 프린터라면 맞춤 안경 시대를 저렴한 비용에 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3D 프린팅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성우석 대표. 회계사 출신의 인수합병(M&A) 컨설팅을 하다 제조 창업을 결심했다. [사진 브리즘]

3D 프린팅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성우석 대표. 회계사 출신의 인수합병(M&A) 컨설팅을 하다 제조 창업을 결심했다. [사진 브리즘]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3D 프린팅 안경 브랜드를 런칭한 성우석 대표는 원래 회계사였다. 유명 증권사에서 인수합병(M&A) 컨설팅을 10년 했다. 전문성을 인정받고 연봉도 높은 직업을 그만 두고 왜 안경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인수합병을 할 땐 한주에 100시간씩 일하기 일쑤였어요. 아버지가 제조업 공장을 오래 하셨는데, 어느날 그러시더라구요. ‘그렇게 고생할 거면 차라리 네 사업을 하라’고요. 그때부터 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시작됐어요.”

 
금융맨이 왜 제조 창업을 택했을까. “어려서부터 아버지 공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제조업이 친숙했어요. 컨설팅을 할 때도 M&A 대상이 대개 제조업이었죠. 무엇보다 금융업에 있다보니 부가가치의 원천을 만드는 건 제조업이라고 생각해 동경심을 품었던 것 같아요.”  
 
3D 프린터를 활용한 창업을 결심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3D 프린팅은 원래 그의 취미였다. “늘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혼자 인터넷을 검색해 3D 프린팅을 배웠죠.” 맞춤 생산에 적합한 3D 프린팅이라면 제조업의 고질적 문제인 ‘재고’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10여년 동안 기업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그다. “제조업의 건전성은 결국 재고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전 제조업체를 평가할 땐 매출ㆍ수익보다 재고부터 따졌어요. 손익 계산서에서 재고는 비용으로 분류하지 않아요. 그런데 실제로 재고로 인해 자금 압박을 느끼는 회사가 굉장히 많거든요. ‘절대로 재고를 쌓아두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브리즘은 애플의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해 19가지 얼굴 사이즈를 측정한다. 이를 반영해 개인별 안경 도면이 설계된다. [사진 브리즘]

브리즘은 애플의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해 19가지 얼굴 사이즈를 측정한다. 이를 반영해 개인별 안경 도면이 설계된다. [사진 브리즘]

 
시장 조사는 자신 있었다. 해외에선 3D 프린터로 소비재를 만드는 회사가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안경테라는 아이템에 집중하게 된 건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안경은 공산품 중에서 가장 재고 부담이 큰 제품이에요. 안경점 하나가 보통 500~1000개 디자인의 안경테를 들여놔요. 그러자면 그 안경들을 다 만들어야 하는데, 모든 디자인의 최소 생산 단위는 1000개거든요. 얼마나 팔릴지 모르면서 1000개나 되는 안경을 만들어두니 재고가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거죠. 그래서 안경테가 비싸기도 하구요.”
 
3D 프린터로 안경테를 뽑아 쓰고 다녀봤다. 그걸 본 지인이 “그걸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조언을 들어보라”며 안경 유통 전문가를 소개했다. 안경 편집숍 브랜드 ‘알로’를 창업했던, 지금은 브리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박형진씨다. 박 대표는 3D 프린터로 뽑아낸 안경을 보더니 동업을 제안했다. 실력있는 안경 제조업체를 소개해 동업에 참여시켰다. 그렇게 2016년 겨울, 본격적인 제품 개발이 시작됐다.  
 
브리즘이 안경 도면 설계에 활용하는 데이터는 모두 19가지다. 얼굴 너비나 눈동자 사이 너비, 콧등 높이 등은 편안한 안경 제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수치다. [사진 브리즘]

브리즘이 안경 도면 설계에 활용하는 데이터는 모두 19가지다. 얼굴 너비나 눈동자 사이 너비, 콧등 높이 등은 편안한 안경 제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수치다. [사진 브리즘]

 
첫 제품은 투박했다. 3D 프린터로 막 뽑혀나온 플라스틱 안경테는 표면이 거칠고 하얐다. 어떻게 표면을 다듬고 염료를 먹이느냐에 따라 디자인 완성도가 결정된다. 최적의 연마제와 최고의 염료를 찾기 위해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공장에서 매일 새벽까지 조건을 바꿔 가며 연마와 염색을 반복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나, 막막할 때가 있었죠. 언젠가는 답을 찾을 거란 확신으로 버텼어요.”

 
1년 간의 실험 끝에 결국 연마제와 염색 기계를 모두 자체 개발했다. 가장 어려웠던 게 염색이다. “거의 모든 3D 프린팅용 염료를 써봤는데 색깔이 안 먹거나 손에 묻어나는 거에요. 동대문에서 단추를 염색하는 염료를 사봤는데도 마찬가지였어요. 염료의 핵심 성분을 분석해가며 다양한 섬유 염료를 조합했어요. 최적의 온도를 찾기 위해 염색 기계를 만들었구요.”
 
3D 프린터로 막 뽑혀나온 안경테는 표면이 거칠고 흰 색이다. 이를 어떻게 연마하고 염색하느냐에 따라 디자인 완성도가 결정된다. [사진 브리즘]

3D 프린터로 막 뽑혀나온 안경테는 표면이 거칠고 흰 색이다. 이를 어떻게 연마하고 염색하느냐에 따라 디자인 완성도가 결정된다. [사진 브리즘]

 
2017년 말, “이 정도면 됐다”는 수준의 안경테가 개발됐다. 그즈음 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생겼다. 애플이 2017년 11월 출시한 스마트폰 아이폰X가 안면 인식 기술을 탑재했다. 원래는 얼굴 측정을 위해 고가의 안면 스캐너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스마트폰만으로 간편히 안면 스캐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 대표는 직접 코딩을 배웠다. 애플의 페이스 아이디 파일을 추출해 얼굴을 인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모르면 개발을 의뢰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지침을 줬더니 2주 만에 간단한 앱이 나왔죠.”  
 
지난해는 시장 조사의 해였다. 공유오피스 위워크 등 서울 곳곳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했다. 그 과정에서 15가지 색깔, 20가지 디자인 샘플이 선정됐다. 지난달 서울 역삼동에 정식으로 매장을 내고 소비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브리즘 안경테는 보통 20만원대이며 무게는 7g 정도다.
 
브리즘은 20가지 모양, 15가지 색깔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안경테를 맞춤 제작한다. [사진 브리즘]

브리즘은 20가지 모양, 15가지 색깔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안경테를 맞춤 제작한다. [사진 브리즘]

 
성 대표는 벌써 다음 스텝을  구상 중이다. 안면 인식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 안경테 추천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고객의 얼굴 측정 데이터가 쌓여가는 것이 저희에겐 큰 자산이에요. 비슷한 얼굴형의 고객들은 보통 이런 안경테를 선택했고, 만족도가 어땠다는 것을 제안할 수 있게 되죠.”

 
성 대표는 “최근 남성 그루밍 열풍으로 안경테 시장은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성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이 몇개 없잖아요. 시계와 넥타이, 구두 말고는 안경 정도죠.” 그는 “디자인이 훌륭한 수입 안경테는 동양인 얼굴형에 맞지 않아 많은 이들이 불편을 느꼈다”며 “금속 3D 프린팅 기술도 무르익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금속테 제품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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