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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특공 병력은 특공대인가 가이드인가

중앙일보 2019.04.17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살다 보면 “뭐지?”라며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다. 이달 초 정부가 발표했던 비무장지대(DMZ) 둘레길 방안에서 그랬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 발굴 등 긴장 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강원도 고성(동부)·철원(중부), 경기도 파주(서부) 등 3개 지역을 평화안보 체험 길로 선정했다”는 취지다.
 
① 방탄복·방탄헬멧은 비치용인가, 착용인가=국방부는 DMZ 둘레길 계획을 설명하면서 방문객들의 안전 문제에 대비해 방탄복, 방탄헬멧을 경호병력 차량에 휴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발적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만일에 대비해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면 아예 처음부터 민간인 방문객들에게 착용시키면 더 안전하지 않을까. 방탄복은 입을 때 효과가 있지 차량용 소화기마냥 비치한다고 효과가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 의문은 방탄복, 방탄헬멧을 비치하고 둘레길을 찾아야 하는가이다. 둘레길이라는 단어에는 휴식, 편안함, 마음의 안정 같은 심리적 느낌이 포함돼 있는데 ‘방탄헬멧 둘레길’은 궁합이 맞지 않는 듯 하다.
 
② 특공 인력은 특공인가, 관광 가이드인가=군은 민간인 방문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군단 특공 인력들이 경호작전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사전 브리핑에선 “관광객 이동 시 감시 장비를 이용해 북한군의 총안구를 면밀히 관찰하는 등 대응 태세를 철저히 갖추겠다”는 설명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에 따르면 군단 특공연대의 경우 적지 종심(敵地 縱深) 침투와 정찰 및 화력 유도 훈련을 평소에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사시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 중요 병력에 대한 정확한 좌표를 송신해 아군 포병의 포격을 유도한다. 그러니 이들은 유사시엔 내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사즉생으로 임하는 병력이다. 이런 전투 병력을 민간인 방문객들이 이동할 때 경호 병력으로 활용한다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목숨 걸고 좌표 찍는 특공대원들이 매일 DMZ에서 관광객 차량 앞뒤에 붙어 ‘콘보이’로 움직이는 장면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특공 인력은 특공인가 가이드인가.
 
③ DMZ 둘레길은 안보 견학인가, 평화 견학인가=우여곡절 끝에 파주 DMZ 코스가 열릴 경우 북한군 GP로부터 1.5㎞ 거리까지 민간인이 접근하게 된다. 북한군의 고사총 사거리 안이다. 특공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DMZ 안으로 들어간 뒤 이곳이 북한군 사거리에 있음을 느낀다면 어떨까. 남북 간 긴장 완화의 현장을 확인하는 동시에 분단의 엄중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무장한 특공 병력의 호위를 받는 순간 아마 ‘우리 장병들 든든하고 고맙다.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가 후방에서 발 뻗고 잔다’고 느낄 것 같다.
 
어색한 궁합이지만 DMZ 둘레길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역점 사업인 만큼 이달 실시하는 고성에 이어 향후 파주, 철원에까지 확대돼 시행될 것이다. 이때 DMZ 둘레길은 망외의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과거 대북방송에 버금가는, 아니 뛰어넘는 효과를 줄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DMZ는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그런 파주, 철원 DMZ에서 남한의 젊은 청춘 남녀들이 울긋불긋 원색의 옷을 입고 쌍쌍으로 누비는 모습이 북한 경계병들에게 매일 노출될 테니 심리전 효과로 보면 상당할 수 있다. 과거 시끄러운 스피커로 대북 방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젠 시각적 심리전이다. 젊은 북한 병사들이 거리낌 없는 남한 젊은이들을 망원경으로 볼 때마다 남북 체제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낄 것 같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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