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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갈등 위에 젠더 갈등, 현 정부서 6배로

중앙일보 2019.04.17 00:04 종합 5면 지면보기
불안한 대한민국 ①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최모(22)씨는 최근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듣다가 여자친구와 크게 다퉜다. 성매매에 대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가 약자를 매수해 전유하는 행위’라고 한 강의 내용이 다툼의 시작이었다. 최씨는 “성 매수자만 잘못이냐. 돈을 벌려고 성매매하는 여성이 약자냐”고 말했으며 여자친구는 “남성이 사회적으로 우위라는 건 당연한 얘기고 성 매수자도 거의 남성이지 않으냐”고 맞섰다.
 
위 사례처럼 남녀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슈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이 분석 전문 업체 타파크로스를 통해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러 사회 이슈 가운데 남녀 갈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다. 분석 대상은 2017년 7월~지난해 말까지 1년6개월간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에 달린 빅데이터 1억2000만 건이다.
 
[그래픽=김주원·심정보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심정보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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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야에서는 젠더(gender·性)에 관한 이슈가 상위 10위 중 6개였다. 2위에 오른 ‘미투 운동(#Me Too)’은 지난해 상반기에 특히 많이 언급된 이후 여러 젠더 이슈를 촉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4위인 ‘구하라 남자친구 폭행 사건’과 5위 ‘이수역 폭행사건’은 남녀 간에 벌어진 폭행 사건이었다. 6위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과 7위인 ‘낙태죄 폐지 논란’, 9위인 ‘한샘 몰카·성폭력 논란’도 젠더와 관련된 논쟁이거나 범죄였다. 이들 이슈는 단순히 사건에 그치지 않고 성별에 따라 해석이 갈리면서 남녀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택광(문화평론가) 경희대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는 안전에 대한 담론도 여성과 결합해 있다. 최근의 버닝썬 사건도 여성을 착취하는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남녀 갈등은 최근에 더욱 주요한 사회 갈등으로 떠올랐다. 2017년 7월~지난해 말까지 1년6개월간 전체 사회 갈등 주제 가운데 남녀 갈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70%에 달했다. 이념 갈등(14.8%)이나 세대 갈등(5.1%), 노사 갈등(4.5%)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이에 반해 2015년 1월~2016년 6월의 1년6개월간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는 남녀 갈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31.2%였다. 차지하는 비율만 보면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남녀 갈등에 관한 글의 건수(언급량)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해당 기간 동안 385만여 건에서 2409만여 건으로 6배가 됐다.
 
남녀 갈등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성범죄’ ‘데이트 폭력’ ‘홍대 누드모델 몰카 유출’이 1~3위였다. 범죄 사건이 남녀 갈등을 유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이 밖에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4위에 올랐다. 김수현 타파크로스 이사는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를 모으면서 여성 연예인들이 SNS에 책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남성들이 역차별을 조장하는 소설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고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 갈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취업준비생 이모(25)씨는 “모든 남성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20대 남성은 기성세대처럼 기득권을 별로 누리지도 않았는데 공격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장남이라’ ‘남자니까’ 겪는 부담감이 있는 게 현실인데 여성 권리만 강조해 역차별을 겪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제 20대 남성의 현 정부 지지율은 여성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35%로 20대 여성(60%)보다 25%포인트 낮았다. 특히 20대 남성의 고용·노동 정책에 대한 불만이 72%로 전 연령층 남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반면 여성들은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남성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역차별이란 말에는 성불평등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 하면 남성은 갑자기 피해자로 돌변한다”고 말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젠더 갈등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현재 상황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데에서 발생한다”며 “여성은 여성 차별과 여성 혐오를 보지만 남성은 남성 혐오와 역차별을 보면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녀 갈등은 온라인 공간에서 부정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남녀 갈등에 관한 감성어를 분석해 보니 2017~2018년 시기에는 부정적 단어가 47%로, 2015~2016년 시기(38%)보다 늘었다. 특히 조롱·협박·모욕·혐오 등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게 하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신광영(사회학) 중앙대 교수는 “남녀 갈등이 소모적인 혐오 감정으로 나타나고 인터넷에서 증폭되는 것은 문제”라며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느냐는 차원에서 갈등이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화제가 됐고,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인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1년6개월간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780개 이슈를 선정했고, 총 1억1957만여 개의 반응이나 언급을 분석했다. 또 이번 조사에선 2015년 상반기~2016년 상반기 1년6개월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시대정신의 변화상도 확인했다. 조사는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타파크로스가 맡았다.
 
◆ 특별취재팀 = 윤석만·남윤서·전민희 기자, 김혁준 인턴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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