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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릴 뻔한 노트르담 대성당, 빅토르 위고 글이 살렸는데…

중앙일보 2019.04.16 14:00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중 한 장면.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모두 8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중 한 장면.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모두 8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라는 도시가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었고, 그 존재 자체로 문학을 포함해 많은 문화·예술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전 세계가 지금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중세 시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꼽추 콰지모도가 종지기로 일하며 그곳에 산다. 성당 앞 광장에 살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엇갈린 사랑과 음해 때문에 마녀로 오해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았을 때,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피신시킨 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1831년에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이 사랑하는 건축물에 바쳤다. 아예 성당 이름을 제목으로 쓴 것이다. 후에 이 소설은 영어 제목 『노트르담의 꼽추』로 더 유명해졌다. 
 
16일 미국 매체 '쿼츠'(Quartz)는 "노트르담 성당은 빅토르 위고, 마르셀 프루스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문학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빅토르 위고였다"고 전했다. 
 
위고는 이 성당의 이름을 제목에 붙일 뿐만 아니라 이 성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본문에 담았으며, 고딕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별히 썼다는 것이다.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의 한 장면.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의 한 장면.

당시 헐릴 위기에 처한 노트르담을 구하고자 이 소설을 썼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혁명을 지나며 성당이 훼손되자 노트르담을 헐자는 여론이 한때 힘을 받았지만, 위고가 쓴 소설이 복원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 '피난처'로 그린 성당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노트르담 드 파리'를 제목으로 소설을 써 당시 헐릴 뻔 했던 성당을 위기에서 구했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노트르담 드 파리'를 제목으로 소설을 써 당시 헐릴 뻔 했던 성당을 위기에서 구했다.

위고는 노트르담(Notre Dame) 성당을 피난처(a place of refuge)로 여겼고, 그것을 구하고 싶어했다. 로버트 자레츠키 미 휴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그는 건축을 '소통의 한 형태'로 여겼다고 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자레츠키 교수는 "위고에게 건축의 역사는 글쓰기의 역사다. 인쇄기 이전에 인류는 건축을 통해 소통했다"고 말했다. 스톤헨지부터 파르테논 신전까지 건축을 '돌의 책'(books of stone)으로 여겼다는 것. 위고가 이 성당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지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루스트를 홀린 노르트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도 노트르담의 당당한 성당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메리 버그먼은 2014년 출간한 책(『On Looking Back One Learns to See: 프루스트와 사진』)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프루스트를 홀렸다(Notre Dame de Paris was spellbinding for Proust)"고 썼다. 프루스트는 모피로 된 외투를 잠옷 위에 걸치고 성당 앞에 2시간 동안 그 앞에 서 있곤 했다는 것이다. 
 
 성당을 보고 전율한 프로이트  
정신과 의사이자 영향력 있는 작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성당에 경외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1885년 프로이트는 이 성당을 처음 보았을 때, "이전엔 없었던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후, 틈이 나면 성당을 찾곤 했다는 프로이트는 "이렇게 감동적으로 엄숙하고 어두운 것을 본 적이 없다( I have never seen anything so movingly serious and somber)"고 말했다.  
 
스크린을 사로잡은 노트르담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 역사가 숨 쉬는 장소이다. [사진 연합뉴스]

1163년 공사를 시작해 1345년 축성식을 연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 역사가 숨 쉬는 장소이다. [사진 연합뉴스]

매년 1200만 명 이상이 찾는 이 성당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에서도 사랑받은 명소다. 
 
1911년 프랑스 무성영화 '파리의 노트르담'을 시작으로 알려진 것만 8편의 영화 또는 만화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배우 앤서니 퀸이 열연한 '파리의 노트르담'(1956)이다. 우리나라에선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도 있다. 1998년 초연 이후 프랑스 대표 뮤지컬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2005년 초연돼 최단 기간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에도 노트르담은 그 배경으로 역사를 쌓아왔다. 1951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파리의 미국인'에서 진 켈리와 레슬리 캐런도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센 강변의 한 지점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고, 로맨스 영화의 대명사 ‘비포 선셋(Before Sunset)’에도 배경으로 등장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아름다움으로 압도하다 
 
전작 ‘비포 선라이즈’에서 그린 첫 만남 이후 9년이 지난 뒤, 파리에서 다시 마주한 두 주인공은 서로 오랫동안 간직해 온 기억을 더듬으며 파리를 산책하며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일화 얘기도 나눈다. 
 
 제시(에단 호크)가 말한다.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파리에서 퇴각할 때 노트르담 대성당에 폭발물을 설치했대. 폭파 스위치를 누를 병사가 남았는데 결국 폭발을 못 시켰대. 노트르담의 아름다움에 압도돼서 말야.”
 
셀린느(줄리 델피)가 “실화야?”라고 묻자 제시는 “몰라, 어쨌든 멋진 얘기지?”라고 답한다.
 
 
우디 앨런의 2011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에서도 주인공 길(오웬 윌슨)이 노트르담 성당 뒤 공원에서 미술관 가이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며, '아밀리에'에서는 아밀리에(오드리 토투)의 엄마가 노트르담 성당에서 뛰어내린 관광객에 깔려 사망했다.
 
2007년 요리 열정을 가진 파리에 사는 쥐 레미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라타투유'에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당당한 배경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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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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