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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증류소를 지키는 개,고양이 그리고 거위들

중앙일보 2019.04.16 13: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9) 
위스키병 라벨에는 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스코틀랜드 아드벡 증류소는 ‘쇼티(Shortie)’라는 개를 키우면서 마스코트로 쓴다. 아드벡 위스키와 상품에 쇼티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또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 중 하나인 ‘블랙&화이트’는 검은색과 흰색의 스코티시 테리어(Scottish Terrier)를 모델로 쓰고 있다. 이 브랜드를 만든 뷰캐넌(Buchanan) 씨가 스코티시 테리어를 좋아해 라벨에까지 그려 넣었다.
 
아드벡 증류소 잔 케이스에 담긴 쇼티의 모습. ‘아일라 섬에서 아드벡을 빼고 가장 피티한 코, 그건 바로...’ [사진 배성훈]

아드벡 증류소 잔 케이스에 담긴 쇼티의 모습. ‘아일라 섬에서 아드벡을 빼고 가장 피티한 코, 그건 바로...’ [사진 배성훈]

 
개의 또 다른 역할은 위스키 증류소에 침입하는 도둑을 쫓는 일이었다. 도심에서 떨어진 위스키 증류소를 밤손님으로부터 지키는 데 개가 꼭 필요했다. 일부 증류소에서는 거위가 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에 있는 글렌버기(Glenburgie) 증류소는 예부터 거위를 키웠다. 사람을 보면 떼로 몰려가 소리를 지르는 거위는 훌륭한 경비원이었다. 글렌버기 증류소는 여전히 거위 떼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글렌버기 증류소 숙성창고를 지키는 거위들. [사진 정보연]

글렌버기 증류소 숙성창고를 지키는 거위들. [사진 정보연]

 
증류소 안살림 지키는 고양이
위스키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몰트(발아된 보리를 건조한 것)는 쥐와 새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증류소를 다녀온 CS bar 김창수 씨는 “킬호만 증류소에는 몰트를 먹으러 오는 참새 때문에 ‘스패로우 쉐어(Sparrow Share)’가 골치라더라”고 전했다.
 
증류소 안살림을 갉아먹는 좀도둑들을 잡는 건 고양이들의 일이었다. 증류소 고양이들은 위스키 캣(Whisky Cat), 디스틸러리 캣(Distillery Cat), 또는 디스틸러리 마우저(Distillery mouser)라 불렸는데, 직원 리스트에도 올라갈 정도로 증류소에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위스키 캣(Whisky Cat). 위스키 캣은 직원 리스트에 등재될 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오른쪽 상단)까지 마련할 정도였다. [사진 Tatsuya Ishihara]

위스키 캣(Whisky Cat). 위스키 캣은 직원 리스트에 등재될 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오른쪽 상단)까지 마련할 정도였다. [사진 Tatsuya Ishihara]

 
가장 유명한 위스키 캣은 ‘타우저(Towser)’라는 글렌터렛(Glenturret)증류소에서 키우던 암컷 고양이다. 23년 11개월간 장수하면서 1987년 3월 20일에 죽을 때까지 28,899마리의 쥐를 잡아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타우저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생일이 같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6년에 타우저 명의로 영국 여왕에게 생일카드가 보내졌는데, 여왕은 “(인간의 연령으로 환산해서) 161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타우저가 죽던 날, 영국 전국에 뉴스가 전해졌고, 많은 이들이 그를 애도했다.
 
글렌터렛 증류소 방문센터에 있는 타우저 동상. [사진 Tatsuya Ishihara]

글렌터렛 증류소 방문센터에 있는 타우저 동상. [사진 Tatsuya Ishihara]

 
요즘 위스키 증류소 근처에는 쥐가 거의 없다. 옛날보다 위생도 좋아졌고, 몰트를 직접 건조하는 증류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증류소는 일감을 잃은 고양이들에게 홍보직을 맡겼다. 미국의 우드포드 리저브(Woodford Reserve)사는 ‘엘리야(Elijah)’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20년 이상 키웠다.
 
그는 쥐를 잡는 능력은 부족했지만, 증류소의 마스코트로 인기가 많았다. 작은 고양이가 오크통 위에서 잠들어있거나 서성이는 모습이 사람들을 기쁘게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엘리야가 죽자 수많은 추모 글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우드포드 리저브 증류소에서 키우던 엘리야. 그가 죽은 뒤, 추모의 글과 함께 증류소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엘리야의 생전 모습. [사진 우드포드 리저브 트위터]

우드포드 리저브 증류소에서 키우던 엘리야. 그가 죽은 뒤, 추모의 글과 함께 증류소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엘리야의 생전 모습. [사진 우드포드 리저브 트위터]

 
얼마 전, 검은색 포메라니안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몰트위스키의 주재료인 보리에서 이름을 따 ‘보리’란 이름을 붙여줬다. 위스키 증류소의 개와 고양이처럼, 건강하게 장수하며 우리 집 위스키를 잘 지켜줬으면 한다.
 
우리 집 강아지 보리. ’위스키 잘 지킬 수 있겠니?“ [사진 김대영]

우리 집 강아지 보리. ’위스키 잘 지킬 수 있겠니?“ [사진 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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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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