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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고통의 나이테

중앙일보 2019.04.16 00:19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 동생을 업고 불길 속을 뛰쳐나온 김○○(6) 군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화마가 앗아간 동갑내기 사촌 둘의 영정 사진 앞이었다. 청소년 수련시설 ‘씨랜드’의 화재에서 살아남은 예닐곱살 아이들은 밤잠을 설치고 끙끙댔다. 교육부는 화재 현장에 있던 어린이들에게 무료 심리치료를 받게 했다. 20년 전(1999년 6월 30일) 인재로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4명 등 23명이 숨졌다. 현장엔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등 544명이 있었다. 수습 기자 딱지를 갓 뗀 나는 유족을 취재하며 많이도 울었다. 그때의 나와 비슷한 스물여섯 청년이 됐을 김군은 어찌 지낼까.
 
# “부모에겐 자식 키우는 게 삶이죠. 그러니 내 인생을 잃은 셈이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6월 29일·502명 사망) 6주기에 만났던 정광진 변호사(인터뷰 당시 64세)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는 20대였던 딸 셋을 한꺼번에 잃고 그들의 이름 속 ‘윤’자를 따서 삼윤장학재단을 만들었다. “헬렌 켈러처럼 되겠다”는 시각장애인 큰딸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서였다. 20주기(2015년)의 언론 보도를 보니 정 변호사는 인터뷰를 거부했고, 유족들은 아직도 ‘삼풍’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 사춘기 이후 아빠는 안중에 없는 여고 1년생 딸이 함께 영화 ‘생일’을 보겠느냐고 제안했건만 선뜻 용기가 안 났다.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304명 사망 및 실종)와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왜 보고 싶은지 물으니 “공감과 연민이 고통을 치유한대”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래를 덮친 비극을 학교에선 그렇게 승화시키고 있구나…. 상상조차 두려운 극한의 고통이 잊힐 리 있겠는가. 다만 켜켜이 쌓여갈 ‘고통의 나이테’를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5주기가 되길 희망한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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