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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두산 이영하 투구도 A학점, 기부도 A학점

중앙일보 2019.04.16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승부조작 신고 포상금 전액을 기부한 두산 투수 이영하. 지난 14일 서울 잠실 LG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연합뉴스]

승부조작 신고 포상금 전액을 기부한 두산 투수 이영하. 지난 14일 서울 잠실 LG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투수 이영하(22)의 기부금 전달식이 열렸다. 이영하는 모교 강남중과 선린인터넷고에 1500만원씩, 그리고 세브란스병원에 900만원을 전달했다. 기부금 3900만원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받은 포상금 5000만원에서 세금을 뺀 전액이다.
 
이영하는 지난해 4, 5월 지인으로부터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고, 이를 신고했다. KBO 규약(제152조 2항)에 따라 포상금을 받은 첫 주인공이 됐다. 지난 몇 년간 한국 프로스포츠는 승부조작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승부조작 제안을 신고하고 포상받은 선례가 생긴 만큼 ‘검은 유혹’이 어려워졌다.
 
이영하는 포상금을 모두 기부했다. 그가 보여준 용기와 선행의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22세 청년은 자신의 연봉(4200만원, 2018년 기준, 2019년은 1억원으로 인상)보다 많은 돈을 어떻게 기부할 결심을 했을까. 지난 12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영하는 “당연한 일을 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영하는 지난해 4월 고교 시절 안면이 있던 동갑내기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인은 “선발 등판 때 첫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면 500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승부조작 브로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영하는 “그런 말 할 거라면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며 끊었다. 지인은 며칠 뒤 다시 전화 걸어 ‘검은 돈’의 액수를 올리려 했다. 이영하는 “아는 사람이어서 ‘굳이 신고까지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며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의 입장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모교인 강남중과 선린인터넷고에 발전기금을 전달한 이영하(오른쪽 둘째). [사진 두산 베어스]

모교인 강남중과 선린인터넷고에 발전기금을 전달한 이영하(오른쪽 둘째). [사진 두산 베어스]

이영하는 이 사실을 구단에 알렸고, 두산은 KBO에 신고했다. 이영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포상금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렇게 큰 금액일 줄 몰랐다”며 “구단 등 주위에서 ‘좋은 일에 쓰면 좋겠다’고 해서 고민하는데, 아버지가 ‘그 돈은 네 것이 아니다. 기부할 거면 다 해라. 좋은 일에 쓰면 네게도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며 웃었다.
 
부친 이준성(45)씨는 평소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아버지이다 보니 아들에겐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영하는 “아버지 말씀대로 다 기부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돈은 야구 잘해서 벌면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씨는 3남매 중 장남인 이영하의 야구인생을 묵묵히 바라봐왔다. 이영하는 “고교 1학년 때까지 야구를 정말 못했다. 외야수였는데 방망이를 너무 못 쳤다. 앞길이 막막했다”며 “그런데도 아버지는 ‘알아서 하라’는 말씀뿐이셨다”고 떠올렸다.
 
이영하는 “만약 (포상금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면 여러 유혹이 있었을 것 같다. 그건 정당한 돈이니까 좋은 차를 사려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라며 “전액 기부를 결정하니까 마음이 편해졌고, 야구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영하가 기부를 결정하자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뉴스보다 더 많은 칭찬이 쏟아졌다. 그는 “여러분이 칭찬해주니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공을 던진다.
 
김태형 감독 등 두산 선수단은 이영하에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영하는 “그게 우리 팀 문화다. 말없이 지켜보고 응원한다”고 설명했다. “감독이나 팬들로부터 어떤 말이 듣고 싶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잘 던지면 감독님이 ‘나이스 피칭’이라고 딱 한 마디 하신다. 그 말을 오래 듣고 싶다. 팬들에게는 ‘야구 잘하는 선수’로 평가받고 싶다”며 웃었다.
 
큰 키(1m92㎝)로 파워 넘치는 공을 내리꽂는 이영하는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지난해 10승(선발 8승) 3패, 평균자책점 5.28였던 그는 올해 세 차례 선발 등판에서 2승 평균자책점 1.80이다. 특히 지난 14일 잠실 경기에서는 선발 등판해 8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LG전 2연패를 끊는, 데뷔 이래 최고 피칭이었다.
 
‘좋은 일’을 하니 진짜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 그의 부친이 말했던 대로.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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