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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승자의 저주…‘아름다운 사람들’ 떠나다

중앙일보 2019.04.16 00:03 경제 1면 지면보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5일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 관련 논의를 한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5일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 관련 논의를 한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연합뉴스]

31년 2개월. 제2 민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이 금호그룹과의 이별을 앞두고 있다.
 
1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확정하면서 박삼구 회장 일가의 경영 체제를 끝내고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됐다. 앞으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서울올림픽의 산물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제2의 민간정기항공운송사업자로 금호그룹을 선정해 ‘서울항공’이 출범할 수 있었다. 88년 8월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엔 보잉 737기 한 대가 전부였다. 89년 제주 노선 취항과 함께 본격적인 항공기 도입에 나섰고 90년 1월 국제선(서울~도쿄) 첫 취항을 기록했다. 복수 민항기 경쟁체제를 확립하려는 정부 방침과 맞물려 아시아나항공의 사세는 급격히 확장했다. 89년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 시행,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쟁으로 90년대 국내 항공업계는 황금기를 맞았다.
 
박주미, 이보영, 한가인(왼쪽부터).

박주미, 이보영, 한가인(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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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슬로건을 앞세운 아시아나항공 CF는 이 황금기의 상징이다. 배우 박주미는 93~2000년까지 아시아나 항공 모델로 활동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배우 한가인도 아시아나항공 CF를 통해 데뷔했으며, 배우 이보영도 이 회사의 모델로 활약했다.
 
가장 좋아 보일 때도 크고 작은 위기는 끊이지 않았다. 93년 전남 목포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가 대표적이다. 제2 민항이었지만 설립 이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엔 7조1833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282억원에 그쳤고 순이익은 마이너스 1958억원, 부채비율은 649%에 달한다.
 
호남 기반 기업 이미지가 강한 금호아시아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다. 인수·합병(M&A) 승부사로도 불린 박 전 회장은 몸집 키우기에 거침이 없었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달아 품었고 자산 규모를 26조원까지 키웠다.
 
금호아시아나의 재계 순위는 순식간에 7위로 치솟았다. 하지만 무리한 사세 확장은 결국 독이 돼 돌아왔다. 사상 최고가인 6조6000억원에 인수한 대우건설은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됐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2008)까지 겹치면서 돈줄은 꽉 막혔다. 유동성 위기는 그룹 전체를 흔들었다.
 
대우건설은 2009년 재무구조 개선 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결국 경영권은 산업은행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바로 되팔았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15년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해 그룹 정상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인수가 무산되면서 그룹 재건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재계에선 박 전 회장의 무리한 M&A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으로 몰아간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재계 관계자는 “무리한 확장 경영은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며 “과거의 방식으로 사세를 확장하려는 박 전 회장의 경영 방침이 현재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매출의 61%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이 팔리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는 중견 그룹으로 쪼그라든다.
 
금호 품을 떠나게 됐지만 아시아나의 등장 덕분에 양대 항공사의 경쟁을 통해 비빔밥 기내식 등 한국형 항공 산업이 발전했다는 평가다. 후발주자로 고군분투하면서 어렵게 쌓아온 업력을 아까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가려 2등에 머물렀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슬로건 아래 깨끗한 이미지를 키워왔다”며 아쉬워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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