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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낭인' 없앤다는 로스쿨···'죽음의 오탈' 덫 걸린 그들

중앙일보 2019.04.15 05:00
'야단법석(야단法석)'에서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야단法석'을 통해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세요. 

[야단法석]

 
 오탈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회 안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영원히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무슨 사정으로 5년의 시험에서 계속 고배를 마셔야만 했을까요. ‘오탈’들의 지나간 시계태엽을 되감아 봤습니다.
 
 내 가족 덮친 질병…수술 7번 받으니 5년 지났다
 A씨(49): 제 인생은 무탈한 편이었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도중 우연히 교육 분야에서 꽤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됐지요. 한동안 잊고 있던 법조인의 꿈이 다시 마음을 흔든 건 로스쿨 제도가 들어오면서입니다. 이미 마흔 살이었고 가정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경험을 쌓은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게 원래 로스쿨의 취지였으니까요.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11년 로스쿨 입학 후 6개월만에 불행이 덮쳤습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는 겁니다.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보름 동안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끝에 간신히 생명은 살렸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총 7번의 심장수술을 받았어요. 로스쿨을 졸업할 때까지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닌 기억밖에 없습니다.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아들을 간신히 회복 단계로 올려놓고 한 숨 돌리려는 순간 이번엔 아내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갑상선에 생긴 암이 림프절까지 번진 겁니다. 안정을 찾을 때까지 변시 응시 기간을 늦춰보려고 해도 사정을 봐주지 않더군요. 과외 아르바이트를 뛰며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시험은 늘 뒷전이었고 그 결과는 오탈이었습니다. 왜 저는, 하필이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고 힘든 시기에 시험을 준비하게 됐을까요. 
 
5년 동안 빚만 갚았는데…떨어지니 또 빚입니다
B씨(41): 공공기관에 취업한 지금도 매일 한숨을 쉽니다. 8년간 변시를 준비하며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거든요. 제 수험 기간을 짓눌렀던 건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었습니다. 로스쿨에 ‘금수저’만 들어간다는 오해가 제일 황당합니다. 차라리 제가 금수저였다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전남대 로스쿨을 다닌 저는 한 학기당 500만원의 학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장학금을 받을 수는 없는 어중간한 처지였거든요. 변시 준비 학원은 다닐 엄두도 못 냈죠. 자연스레 학비 대출을 택하게 됐고, 3600만원이란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그나마 국립대라서 이 정도만 빚진 데 감사해야 했어요.
 
문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였습니다.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갚아나가야 했고, 생활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150만원 가량의 돈이 꾸준히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생활의 중심은 늘 아르바이트가 됐습니다. 병원 당직 알바와 공공기관 임시 알바를 뛰며 공부를 병행했어요.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도 하루 6시간 정도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죠. 
 
다섯번째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일 중간에 돈을 좀 모아놓고 제대로 공부에 임할 공백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좀 더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있는 변시 학원에 다녔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공부법 뒤늦게 깨달았는데…수능 5번만 본다면 납득할까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모두 놓친 후 유튜브에서 '오탈누나'로 활동하고 있는 탁지혜씨. [탁지혜씨 유튜브 캡처]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모두 놓친 후 유튜브에서 '오탈누나'로 활동하고 있는 탁지혜씨. [탁지혜씨 유튜브 캡처]

 탁지혜(37)씨: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제 공부법이 잘못됐었다는 걸. 연세대 법대 졸업 후 부산대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모의고사 점수가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처음 떨어졌을 때는 꽤나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결국엔 합격할 거라고 믿고 계속했는데, 졸업 이후부터 스텝이 꼬였던 것 같습니다. 혼자 고립돼서 공부를 하다보니 아무 정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저는 약한 과목은 기초부터 다져야 하는 스타일인데, 무조건 5년 안에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다 보니 급한 마음에 ‘땜질’ 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마지막 시험 때가 되어서야 이판사판이란 생각에 원래 내 식대로 공부를 했는데, 오히려 성적이 오르더군요. 이미 때는 늦었죠.

 
공부에도 다 각자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탈제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봐요. 졸업하고 시험을 볼 수록 각종 정보로부터 멀어지고 생업의 압박은 더욱 심해지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유튜브가 어느덧 구독자 1700명을 넘었습니다. 응원하는 댓글도 있지만 ‘오탈 주제에 불만만 많다’는 조롱성 악플도 달리더군요. 그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수능을 5번만 보게 해도 괜찮은지. 로스쿨생들만 왜 개인이 시험 볼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나요.
 
변시 공부도 부익부빈익빈…"공부 임할 시간 달라"
 올해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 째입니다. 10년 전 정부가 로스쿨을 처음 국내에 들여오면서 설명한 취지는 이랬습니다. ‘고시 낭인 양산에 따른 부작용을 막고, 사법부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법조인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변호사 수 증가를 통해 법률 비용을 절감한다.’ 그 취지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10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법조인이 배출됐지만 동시에 법조인이 될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 오탈자 441명(법무부 추산)도 그림자처럼 남았습니다. 변호사 합격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시 낭인이 없어진 자리를 오탈자들이 채운 셈입니다. 
 
이들은 질병이나 출산·생업을 이유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5년 제한을 둔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변호사시험법 제7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로스쿨이 ‘고시 학원’처럼 변모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상원 법학전문대학원원우협의회 회장은 “학생들은 오로지 변시에 합격하기 위한 암기 위주로만 공부하고 교수들도 그에 맞게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며 “과거 사법시험 합격에만 몰두해 사회적 감수성이 부족한 채 법조인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로스쿨이 도입된 건데 원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자격시험처럼" vs "변호사 시장 포화"…갈팡질팡하는 법조계
변호사 시험장을 확인하고 있는 한 수험생.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변호사 시험장을 확인하고 있는 한 수험생.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법조계에선 서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로스쿨 단체는 변호사도 절대평가를 바탕으로 한 자격시험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막대한 교육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는만큼 의사나 교사 자격증 시험처럼 일정 수준의 합격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대한변협 측은 지금도 시장 포화 상태인데 변호사 수를 더욱 늘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을 통폐합하면 자연스레 변시 낭인 문제도 해결될 거라는 겁니다. 실력이 떨어지는 변호사들을 무작정 배출하고 나면 그 피해는 의뢰인들에게 돌아갈 거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각종 이해관계는 엇갈리는데 법무부는 “해결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6일 제 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됩니다. 응시생 3617명 중 절반은 변호사로, 일부는 변시 낭인으로, 나머지는 ‘오탈’의 대열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를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천 명의 로스쿨 탑승자들은 불안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박사라ㆍ백희연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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