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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침묵의 살인자’에 맞선 반기문

중앙일보 2019.04.15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인터넷 검색창에 airvisual.com을 치고 들어가 보시라. 세계 주요 도시의 ‘공기의 질(AQI:Air Quality Index)’ 순위와 초미세먼지(직경 2.5㎛ 이하의 입자)의 농도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4월13일 오후 3시30분 현재 공기 오염도 1위는 중국의 선양(초미세먼지 140㎍/㎥)이다. 3위 베이징(120㎍), 6위 청두(67㎍), 11위 항저우(34㎍), 13위 우한(39.5㎍), 18위 광저우(30㎍), 25위 충칭(27㎍), 29위 상하이(30㎍)였다. 서울(42위·17㎍)보다 공기가 나쁜 중국의 도시가 8곳이다. 일본 도쿄의 경우는 세계 61위(13.5㎍). 공기는 지구 상공에서 국경을 넘어 돌아다니기에 오염 순위가 수시로 바뀐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airvisual.com의 과학기술적 데이터는 중국의 공기 오염도가 매우 나쁨임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호흡 공동체론에 승부
“미세먼지는 국경없이 돌아다녀”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 선물

따라서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달 전 중국 외교부 루캉 대변인의 발언은 패권국의 오만이 느껴지는 이상한 소리다. 중국·한국·일본은 북반구 중위도(북위 30~60도)에 자리잡은 나라들이다. 이 지역에선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는 지구의 성질상 편서풍이 분다. 서에서 동으로 바람이 이동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공기가 중국→한국→일본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태양이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얘기만큼이나 진실이다. 돈과 인구와 군사력이 강하다고 자연 법칙까지 넘어서려 하면 곤란하다. 루캉 대변인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한·중·일 3국은 지리·역사·주권적으로 대립할 때가 많지만 같은 하늘 아래 ‘호흡 공동체’의 일원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동아시아 호흡 공동체론을 가다듬고 있다. 그는 “물은 가려서 마실 수 있지만 공기는 가려서 숨쉴 수 없다. 수질은 세 나라가 각자 책임질 일이지만 공기의 질만은 세 나라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늘에 장벽을 칠 수 없으니 도리없이 서로 협조해서 답을 찾자는 얘기다.
 
반기문의 생각은 이달 초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대화하면서 구체화됐다. 반 전 총장에 따르면 “시 주석이 미세먼지에 대한 한국인의 심각한 우려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루캉의 ‘책임 회피’ 보다 시진핑의 ‘우려 파악’ 쪽을 파고 들어 이해 공유→공동 조사→조치 분담의 순서로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자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우리 강토에서 발생한 것이 중국으로 날아가기도 한다”는 넋나간 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반기문의 안목은 여러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들을 조정하면서 강대국 정치의 허실을 체험한 유엔 사무총장 10년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11일 로마 바티칸 궁전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도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후변화와 싸우는 반 전 총장에게 선물로 줬다. 반기문은 “자연은 타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런 대화들은 미세먼지에 맞서는 반기문에게 귀중한 윤리적·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반기문은 공적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미세먼지에 걸었다. 2017년 대선의 라이벌이 될 뻔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반기문은 “대통령의 요청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 들였다”고 했다. 미세먼지는 20~30대의 80%가 이 문제 때문에 한두 번 혹은 자주 이민을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국난(國難)이다(시사저널 3월29일자 여론조사).
 
북핵 대응, 친일 청산,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 쫙 갈라진 국론이 미세먼지 문제에선 하나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이래 이렇게 국민 마음이 일치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침묵의 살인자의 역설적 효과다. 이 효과가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인지는 앞으로 반기문 하기에 달렸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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