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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낙태 못해…시술 거부권 달라” 산부인과 의사의 청원

중앙일보 2019.04.15 00:04 종합 10면 지면보기
한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직후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시술 거부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매일 생명 신비 느끼며 살았는데…”
전문가 “법 개정 때 명확히 해야”

10년 이상 출산 현장을 지켰다는 이 의사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낙태 합법화, 이제 저는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이지’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14일 현재 1만3000여명이 동의했다.
 
이 의사는 “그동안 소신껏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걸어왔는데 낙태 합법화 소식을 듣고 ‘이제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청원을 올린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저도 한 여성으로서 낙태를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으며 그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10년 이상 밤낮으로 산모를 진료하고 저수가와 사고의 위험에도 출산 현장을 지켜온 저에게 낙태 시술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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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사는 “아기집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출산까지 산모와 함께하며 생명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매일 느낀다. 또 어떤 산모는 아기가 아플지라도 어떡하든 살 수 있게 끝까지 도와달라고 애원한다”며 “다 적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연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저는 도저히 신비롭게 형성된 태아의 생명을 (비록 아직 아기집이라고 해도) 제 손으로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는 오랜 시간 분만 현장에서 즐겁고 보람되게 일했기에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지만, 생명의 신비에 감동해 산부인과를 선택하려는 후배들은 낙태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할 것이며 독실한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라면 종교적 양심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 합법화돼도 원하지 않는 의사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료 거부권을 반드시 같이 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수술해 달라고 환자가 요구할 경우 신념 때문에 낙태를 안 하는 의사도 있을 텐데, 진료 거부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들(의사)이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처벌받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의료법 15조(진료 거부 금지) 1항에는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낙태가 아직 합법화된 게 아니어서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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