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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부릴 나이에 긴 머리 싹둑…시골 여중생 기특한 상고머리

중앙일보 2019.04.14 16:07
전북 완주군 이서면 삼우중학교 2학년 변희원·윤다은·김예윤·이채원·정세인(왼쪽부터)양. 백혈병 등 소아암 환자들이 쓰는 가발에 필요한 모발을 기증하기 위해 지난 8일 긴 생머리를 단발머리나 상고머리로 잘랐다. [사진 학부모]

전북 완주군 이서면 삼우중학교 2학년 변희원·윤다은·김예윤·이채원·정세인(왼쪽부터)양. 백혈병 등 소아암 환자들이 쓰는 가발에 필요한 모발을 기증하기 위해 지난 8일 긴 생머리를 단발머리나 상고머리로 잘랐다. [사진 학부모]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삼우중학교 2학년 김예윤(14)양은 지난해 7월 '단발머리 소녀'가 됐다. 그리고 올봄엔 그보다 더 짧은 '상고머리'로 잘랐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그가 긴 생머리를 싹둑 자른 이유는 뭘까.
 

[착한 뉴스]
완주 삼우중 2학년 5명 생머리 '싹둑'
소아암 환자 가발 만드는 모발 기증
"염색·파마 안하고 25㎝ 이상 길러야"

예윤양은 지난해 초 경기도 수원에서 아버지 직장(농촌진흥청)이 있는 완주로 이사 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싶던 차에 딸의 고민을 들은 어머니 윤현주(44)씨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변화보다는 나눔을 택하는 게 어때?" '백혈병 등 소아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머리카락을 기증하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예윤양은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애지중지 길러 온 머리카락을 자르라니…."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혔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외출을 꺼리던 또래 친구들이 기부자들이 보낸 모발로 만든 가발을 쓴 뒤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옆집에 사는 같은 학교 단짝 윤나경(14)양도 예윤양과 함께 미용실에 갔다가 기꺼이 생머리를 잘랐다. 미용실 양세연 원장은 "마음이 예쁘다"며 공짜로 머리를 잘라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백혈병 등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증한 삼우중 2학년 김예윤(14)양이 지난 8일 미용실에서 본인 머리를 들고 수줍게 웃고 있다. 머리가 덜 자라 바투 깎아 상고머리가 됐다. [사진 학부모]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백혈병 등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증한 삼우중 2학년 김예윤(14)양이 지난 8일 미용실에서 본인 머리를 들고 수줍게 웃고 있다. 머리가 덜 자라 바투 깎아 상고머리가 됐다. [사진 학부모]

두 학생이 단발머리가 된 사연은 학교 안에서 입소문이 나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나도 동참하겠다"며 머리를 기르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소녀들의 작은 선행이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린 셈이다.  
 
올해는 지난 8일 삼우중 2학년 여학생 40여 명 중 예윤양을 비롯해 변희원·윤다은·이채원·정세인양 등 5명이 모발을 기증했다. 다른 학생 상당수도 참여를 원했으나 머리가 짧거나 염색을 해 마음만 보탰다.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증하는 모발 조건은 까다롭다. 염색이나 파마를 하지 않은 25㎝ 이상 모발이어야 한다.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자로 등록한 후 모발을 우편으로 지정된 특정 가발업체에 보내면 그곳에서 가발을 만들어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증한다. 모발 기증 캠페인은 오는 20일로 끝나지만, 협회와 가발업체의 가발 제작비 지원은 계속된다. 
 
이번에 단발머리가 된 친구 4명과 달리 예윤양은 그보다 더 짧은 '상고머리 소녀'가 됐다. 지난해 여름 모발을 기증해 머리카락이 덜 자라서다. 모발 기증 기준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더 바투 깎았다. 스포츠머리보다 길지만, 길어야 5㎝다. 
 
사춘기 소녀로서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 "예쁘다" "잘 어울린다" "네가 남자였으면 대시했을 거야" 등 칭찬해 주기 바쁘다. 소녀들은 "머리는 짧아졌지만, 내 머리카락을 (소아암 환자들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딸들의 선행에 올해는 예윤양 어머니 등 학부모 2명도 모발 기증에 동참했다. 삼우중 졸업생 1명도 머리카락을 내줬다. 학교 측도 나섰다. 임덕래 삼우중 교감은 "학생들에게 남을 돕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캠페인을 독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나눔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삼우중 전교생 210여 명 중 53명이 비정부단체(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의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직접 뜨개질한 털모자 95개는 아프리카에 보내졌다. 밤낮 기온 차가 심한 지역이어서 갓난아이들에게 털모자를 씌워주면 사망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굿네이버스에서 하는 '저소득 가정 10대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지원 사업'에도 학생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삼우중 학생들이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보낼 털모자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이 학교 학생 53명이 비정부단체(NGO) 세이브더칠드런의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사진 학부모]

삼우중 학생들이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보낼 털모자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이 학교 학생 53명이 비정부단체(NGO) 세이브더칠드런의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사진 학부모]

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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