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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핀 들길 홀로 걷던 현아, 지금 어디에 있을까

중앙일보 2019.04.14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9)
봄이 되면 과일 장사가 파는 과일 목록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논둑에 냉이꽃과 꽃다지가 활짝 피었던 오래전 봄. 나는 냉이꽃을 닮은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사진 pxhere]

봄이 되면 과일 장사가 파는 과일 목록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논둑에 냉이꽃과 꽃다지가 활짝 피었던 오래전 봄. 나는 냉이꽃을 닮은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사진 pxhere]

 
논둑에 냉이꽃과 꽃다지가 활짝 폈던 오래전 봄. 나는 상큼한 오렌지를 가득 싣고 화물차와 함께 도로 위에 있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있는 냉이꽃을 닮은 키 작은 꼬마 여자아이. 나는 그 아이를 용인 남사면 전궁리 길 위에서 처음 만났다.
 
현아와 처음 만난 흙먼지 길
그날도 희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 길을 달렸다. 저 앞에 작은 아이가 길가에 핀 풀꽃을 구경하면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키가 유난히 작아서 내 딸 또래로 보였다. 그 아이 앞을 달려가면 아이는 내 차가 일으킨 흙먼지를 모두 뒤집어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간 학교 마치고 혼자 농로를 걸어 쓸쓸히 빈집으로 가고 있을 어린 내 딸과 오버랩 되었다. 나는 속도를 줄이며 차를 세웠다.
 
“예쁜 딸, 집이 어딘데 혼자 걸어가니?”(나는 지금도 내 자식 또래들은 아들딸이라 부른다) “저기요.” 아이가 손짓하는 곳을 보았다. 얼마쯤 떨어진 곳에 붉은 벽돌로 된 건물 하나가 보였다. 건물 옥상 커다란 간판에 ‘OOOO원’이라 적혀있었다. 언뜻 봐도 보육원이었다. “타, 아줌마가 태워다 줄게.”
 
나는 급히 조수석에 어질러진 장부와 물병 등을 치우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잠시 망설이던 아이가 가방을 안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렇게 남의 차 막 타고 그러면 보육원 선생님께 혼나요.” “맞아. 조심하는 게 좋지. 근데 아줌마는 나쁜 사람 아니니 괜찮아. 이름이 뭐야?” 아이 이름은 현아(가명)였고 열두 살이라 했다.
 
길에서 만난 현아(가명)라는 여자아이를 보육원까지 태워다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한 보육원 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미니 골프채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길에서 만난 현아(가명)라는 여자아이를 보육원까지 태워다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한 보육원 마당에서 어린아이들이 미니 골프채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그곳까지 태워다 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아이는 나이보다 몸집이 작았다. 표정이 어두웠고 말 수도 적었다. 어쩌다 활짝 웃을 때 보니 미소가 참 예뻤다. 나는 현아를 태우고 건물 주차장까지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현아는 혼난다며 건물 밖에서 내렸다. 나는 급히 운전석에서 따라 내렸다. 이것저것 과일을 봉지에 담고 약간의 용돈을 손에 들려주었다.
 
이렇게 인연이 된 현아는 종종 그 길에서 내 차와 마주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현아는 들판 멀리서 주황색 천막을 씌운 파란색 내 화물차를 발견하면 길 위에서 춤을 추면서 두 팔을 활짝 쳐들고 웃었다. 나는 그런 현아의 밝은 모습을 보며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언제부턴가 현아는 나를 ‘과일 이모’라고 불렀다. 보육원 친구와 언니·오빠들에게도 당당히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3년쯤 우리 인연은 알콩달콩 이어졌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과일을 차에 실으면 나는 현아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뜨곤 했다. 그 길에서 보이지 않으면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눈비가 올 때는 현아가 내게 전화를 걸어 어디쯤이냐고 딸처럼 물었다. 나는 장사를 하다가도 현아가 부르면 가능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성탄절에도 새해에도 나는 현아의 웃는 모습이 좋아 그곳에 과일을 선물했다. 어느 날 현아는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연락이 뜸했다. 얼마 후 새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한번 만났다.
 
“현아야 아무 일 없는 거지?”
“네.”
“다른 일 없다니 다행이다. 이모는 네가 연락이 없어 걱정했어. 보낸 문자는 다 봤어?”
“네.”
 
나는 할 수만 있으면 현아와 오래 소식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 점점 연락되지 않았다. 몇 번은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 못 했다고 일 년이 거의 다 되어갈 때쯤 현아가 불쑥 전화를 걸어주었다.
"이모, 요즘 학교도 점점 늦게 끝나고 이젠 자주 못 볼 것 같아요."
 
할 수만 있으면 오래 소식을 나누고 싶었지만, 현아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연락되지 않았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할 수만 있으면 오래 소식을 나누고 싶었지만, 현아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연락되지 않았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 후 내 전화를 받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현아가 그리웠다. 문자 보내도 답변이 없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그 보육원 앞을 지날 때마다 현아가 마음에 밟혀 어느 날 용기 내어 찾아가 보았다. 아이들 몇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양손 가득 과일을 들려주고 현아 소식을 물어보았다.
 
다른 보육원 옮긴 후 연락 끊겨
“현아는 잘 있니? 요즘 현아가 연락이 안 되네.”
“그 누나 다른 곳으로 간 지 꽤 됐어요.”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니?”
“우리는 그런 거 서로 몰라요. 그 누나 저번에 여기 딱 한 번 놀러 왔다가 갔어요.”
 
나는 그날 보육원 사무실에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전 현아의 말이 떠올랐다.
“이곳은 누가 찾아오고 이것저것 묻는 것 싫어해요. 잘 알려주지도 않고요.”
 
그것이 나와 현아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과일 차를 끌고 정기적으로 다니던 그 들판에 생기가 사라졌다. 그전과 똑같이 일해도 이상하게 쉽게 피로가 밀려왔다. 그때는 과일을 많이 팔지 못해도 현아의 미소를 볼 생각에 마냥 즐거웠었다. 그러나 현아가 다른 곳으로 떠난 후, 그 동네를 오가며 과일을 많이 팔아도 마음이 크게 즐겁지 않았다. 그때 내가 현아를 도운 것이 아니라, 내가 현아로 인해 더 큰 에너지를 얻었던 듯하다.
 
이웃에게 선을 베푼 것은 내가 아니라 현아였다. 현아가 나로 인해 밝아진 미소가 있었다면, 나는 그런 현아를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힘을 얻었던 사실을 현아가 멀리 떠난 후 깨달았다.
 
봄꽃이 핀 들길을 홀로 걷던 그 작은 현아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어쩌면 현아는 지금도 나에게 다양한 이웃의 얼굴로 스쳐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크든 작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소중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마음을 나누는 것은, 그것을 받는 이보다 주는 이가 훨씬 더 큰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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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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