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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 제대로 하면 되레 실망…'치매대국'의 이상한 식당

중앙일보 2019.04.13 10:00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혜자(김혜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진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혜자(김혜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진 JTBC]

 
중앙일보 대중문화팀 정현목 기자, 한국영화 전공의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한일간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는 '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 13번째 주제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 영화 '로망'을 계기로 본 양국의 치매 문제입니다. 치매가 드라마와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건, 곧 치매환자 100만명 시대를 맞게 될 우리 사회의 고민이 투영된 것이겠죠. 치매환자 700만명 시대를 목전에 두고 지역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치매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치매 선배국' 일본에서 배울 게 많아 보입니다. 
 

 
나리카와 아야(이하 나리카와)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보고 엄청 울었어요. 97세 할머니가 치매를 오래 앓고 계시거든요.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정현목(이하 현목)= 가족이 고생 많겠네요.
 
나리카와= 손녀는 알아보면서도 갑자기 훨씬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퇴근 안한다며 여기저기 전화하는 거예요. 치매가 진행돼 지금은 자신이 제 이모인 줄 알아요. 혼자 사실 땐 요리하다 집에 불이 날 뻔한 적도 있고요.    
 
현목= 듣는 것만으로도 딱하네요. 영화 '로망'도 치매 얘기에요. 노부부가 동시에 치매에 걸렸다는 설정이죠.  
 
나리카와= 정상일 때가 서로 엇갈리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점점 줄어 부부가 제대로 대화를 못하니까 쪽지로 필담을 나누는 장면이 애틋했어요. 정상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실함이 와닿아서.      
 
현목= 평소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히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묻는 장면인 것 같아요. 시간이 많다며 미루다 결국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리카와= 맞아요. '눈이 부시게' '로망' 모두 치매 환자를 통해 '지금을 충실하게 여한없이 살자'는 메시지를 줬어요.    
 
현목= 영원히 살 것처럼, 절대 늙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줬죠. 
 
 
나리카와= 일본은 치매환자가 600만명이나 되는 치매대국이다 보니 치매를 다룬 콘텐츠가 많은데, 한국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현목= 예전엔 치매 노인을 희화화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눈이 부시게' 처럼 치매가 극의 중심으로 들어온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나리카와= '눈이 부시게'가 치매 얘기라는 걸 처음부터 부각시켰다면 사람들이 많이 안봤을 것 같아요. '로망' 또한 흥행이 잘 안되잖아요.
  
영화 '로망'의 한 장면. 노부부가 동반 치매를 앓고 있는 설정이다. [영화사 제공]

영화 '로망'의 한 장면. 노부부가 동반 치매를 앓고 있는 설정이다. [영화사 제공]

 
현목= 치매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일본은 치매란 단어가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라며, 정부 주도로 2004년부터 '인지증'(認知症, 일상생활에 지장 있을 정도로 인지능력이 저하됐다는 뜻, 일본발음은 닌치쇼)으로 바꿔부르고 있잖아요.  
 
나리카와= 맞아요. 일본도 예전에는 치매를 부끄럽고 감춰야할 질병으로 인식했는데, 2014년쯤 치매노인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91세 중증치매 남성이 열차 선로에 들어갔다가 치여 숨지는 사건이었죠.   
 
현목= 늘 그렇듯 철도회사가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겠네요. 한국 정서에선 이해하기 힘든 처사이지만.  
 
나리카와= 네. 유족이 철도회사에 720만엔(73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났는데, '가족에만 책임 지우는 건 너무 하다'는 여론이 거셌어요. 아내도 80대 고령인데다 자식을 찾기도 힘들었거든요. 중증 치매노인이 사실상 방치돼 있던 거죠. 결국 최고재판소는 유족이 손해배상 안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현목= 그 사건을 계기로 치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나리카와= 사망한 치매노인처럼 밖에서 배회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2017년 현재 인지증 행방불명 신고수는 1만 5863명에 달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치매환자의 배회를 막기 위해 지역 전체가 나서야 한다' '치매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2025년 일본 치매환자가 700만명을 넘어선다는 전망까지 나왔으니까요.      
 
현목= 이 또한 초고령사회의 그늘이군요. 한국도 5년 후 치매환자가 100만명을 넘을 거란 예측이에요.  
 
나리카와= 한국엔 치매 관련 보도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의 10분의 1이나 될까? 한국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어서 치매가 일본처럼 심각해지는 건 시간 문제인데….    
 
현목= 일본에서 연수할 때 접했던 훈훈한 뉴스 중 하나가 치매노인들이 서빙하는 식당이었어요. 도쿄의 한 식당이 한시적으로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이란 간판을 걸고, 경증치매 노인들에게 서빙을 시켰는데,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함박스테이크 대신 우동이 나오고, 식사 전에 디저트를 갖다주는 등 실수를 연발하는 노인들에게 손님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괜찮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죠. 주문 음식이 제대로 나오면 '실망'의 미소를 짓는 손님들도 있었고요. 반응이 좋아 지금은 실행위원회까지 설립돼 비정기적으로 행사를 열고 있어요. 치매환자를 보는 시선이 이렇게 바뀌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일본의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에서 치매 노인들이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이 주문과 다른 엉뚱한 음식을 가져와도 불평하는 손님은 한명도 없다. [사진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 실행위원회 페이스북]

 
나리카와= 아사히신문에 있을 때 치매 특별취재팀(2014~15년)으로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많이 만났는데, 예전에는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있는 걸 창피해하고, 환자를 집안에 가둬놓는 경우가 꽤 많았대요. 다행히 몇년 전부터 치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현목= 치매환자와 가족들이 일반인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인지증 카페'가 곳곳에 있고, 접객업 종사자들이 치매환자 접객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치매환자들이 세차·화단 가꾸기·아동보육 도우미 등의 단순노동을 하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도 보기 좋았고요. 치매환자와 가족을 돕는 '인지증 서포터'가 1000만명을 돌파했고, 어떤 치매전문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센터)에선 치매환자들이 직원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더군요. 치매환자를 가둬두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는 '커뮤니티 케어'란 말이 실감났어요.   
 
나리카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있다는 게 치매환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거든요. 취재하면서 만난 치매노인들이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오니까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며 다정하게 놀아주는 걸 봤어요.      
 
현목= 그래서 일본에는 치매환자와 놀아주는 로봇, 반려동물이 있잖아요. 한국에선 치매환자들이 요양원·요양병원에서 쓸쓸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치매환자 요양시설이 들어서는 걸 지역주민들이 반대하는 뉴스를 봤는데, 치매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딱 이 정도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했어요. 반대하는 저들도 나중에 치매환자가 될 수도 있는데.     
 
나리카와= 슬프지만 우리 모두 잠재적 치매환자죠. 치매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후회하는 게, 치매 부모를 간병할 때 진작 유족 모임에 나왔더라면 고독감에 시달리지도 않고, 경험자의 노하우를 공유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점이었어요.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끼리 자주 만나 서로 위로하고 노하우 공유하는 게 좋아요. 특히 남성들이 어머니나 아내가 치매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이걸 몰라' '예전엔 잘 했잖아'라며 화를 내요. 그러면 환자는 더 위축되고 상처받죠.       
 
현목= '눈이 부시게' 주인공의 치매는 제작진이 밝혔듯, '예쁜' 치매에요. 현실의 치매는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훨씬 고통스럽죠.    
 
나리카와= 치매 취재를 하며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치매환자 유족들이 그때 더 잘해줄 걸, 싸울 때 너무 심한 말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를 하더군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자, 삶의 고비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자는 결심을 했어요. 신문사를 그만 둔 것도 그런 영향이 컸죠.    
 
현목= '눈이 부시게'가 내게 준 교훈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을 살자'인데, 나리카와 상의 인생관과 일맥상통하네요. 노인성 우울증이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노인들이 보람있고 활력있게 노년을 보내게 하는 과제 또한 사회가 고민해야할 것 같아요.    
 
나리카와= 이해하기 힘든 한국말 중 하나가 '나잇값을 하라'는 거예요. 일본은 노인들이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해도 '나이 드신 분이 왜 이런 일 하나'라고 의아해하지 않아요. 화려한 패션의 노인을 봐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요.    
 
현목= 한국에서 그랬다간 '주책이다' '노망났냐'란 말을 듣기 십상이죠. 도쿄에 있을 때 취미생활, 봉사활동을 하며 젊게 사는 노인들을 많이 봤어요.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는 은퇴자 모임도 많고요. '나잇값 좀 하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나리카와= 일본은 '노인'이란 말도 거의 안 써요. '시니어' '오토시요리(お年寄り)' '넨파이노카타(年配の方)' 등의 말을 많이 써요. 나이보다 경륜에 무게를 둔 표현이죠.    
 
현목= 일본에서 경로석 대신 우선석, 돋보기 대신 루페(확대경) 등의 말을 쓰는 걸 보며, 늙다리 취급 받는 걸 싫어하는 노인 심리를 잘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이 한국 경로당을 벤치마킹해서 노인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지만, 경로당이란 말은 안쓰잖아요.    
 
나리카와= 아무튼 치매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의 선배니까, 많은 걸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사회 전체가 고령자 간병·수발을 책임지는 '개호(介護) 보험'을 벤치마킹해 한국이 '노인 장기요양보험'을 만든 것처럼 말이죠.  
 
현목= '치매'에서 '인지증'으로 말을 바꾼 것이 치매 인식 전환에 큰 역할을 했듯이, 우리도 '치매'를 대신할 말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주창하면서, 논의가 사라졌다고 하네요.  
 
나리카와=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께 청원하는 수 밖에 없네요. 대통령님, 치매 라는 말 좀 바꿔주세요 ^^.  
 
현목= 치매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가 어떤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갈 지 모른다는 거예요.  
 
나리카와= 치매는 정말 안걸렸으면 좋겠지만, 걸린다 해도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던 신입기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네요. 기자님은요?
 
현목= 당연히 신병훈련소 시절이죠.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의 악몽은 군대를 다시 가는 거랍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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