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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집돌이된 왕년의 마당발, 새 친구 만들려면

중앙일보 2019.04.13 09:00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43)
공기업 마케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씨에게도 정년이 찾아왔다. 여유시간이 많아져 그동안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났지만, 이런 날이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내와 갈등이 생겼다. [사진 photoAC]

공기업 마케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씨에게도 정년이 찾아왔다. 여유시간이 많아져 그동안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났지만, 이런 날이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내와 갈등이 생겼다. [사진 photoAC]

 
공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김영관(60) 씨는 관련 분야에서는 회사 안팎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입사 동기보다 승진도 빨랐고, 함께 일한 부하 직원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또한 호탕한 성격으로 마당발로 통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법, 어느덧 정년퇴직하게 됐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래도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했으니 남보다는 혜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푹 쉬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늦잠을 자면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평소 좋아하는 등산도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전에는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한 전 직장 후배들을 만나 점심을 함께하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지나서 생각해보니 김 씨는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현직에 있는 후배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드니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의 만남은 줄어들었고, 그동안 소홀했던 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이 많아졌다.
 
김 씨 나이에 만나는 친구들 대부분은 퇴직자로, 시간적인 여유는 많다. 만나면 쓸데없이 과거 이야기를 하거나 사회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게 되고, 그렇다 보니 술자리가 부쩍 늘었다.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연히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아, 삼식이 되는구나” 덧없는 60년 삶
퇴직 후 고립된 삶을 살거나 가족과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른 일거리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기를 추천한다. [사진 photoAC]

퇴직 후 고립된 삶을 살거나 가족과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른 일거리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갖기를 추천한다. [사진 photoAC]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내와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 아직 미혼인 자녀들은 항상 밖에만 있던 아빠가 집에만 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삼식이 남편이 되는구나.” 이제까지 살아온 지난 60년의 삶이 덧없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바쁘게 울리던 휴대폰 벨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휴대폰에 있는 이름들을 살펴보니 80% 이상이 전 직장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퇴직한 김 씨와 더 이상 전화통화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이 화제가 됐다. 저자인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는 한국 대기업의 프랑스 법인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의 기업문화를 보았다. 그는 한국인은 두 개의 가족이 있다고 했다. 원래 가족과 직장 동료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 동료와 보낸다. 또 대부분의 관계가 현직에서 하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맺어진다. 현직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은 업무와 관련돼 있고, 정년퇴직할 때쯤이면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 있다. 사람들이 좋아서 만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직장생활에서 맺어진 관계는 깊은 듯하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퇴직하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관계는 끊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남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만남이 뜸해지는데, 대부분이 그 이유를 몰라 상처를 입는다. 이런 경우 대개 실망하고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있게 된다. 그러면서 가족들과의 갈등도 커진다. 하지만 무조건 혼자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 직장에서 퇴직한 사람은 퇴직 자체가 매우 커다란 스트레스고, ‘혼자 둥지에 틀어박힌 생활’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분에게 정부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한다. 퇴직 후 실업급여를 받게 되는데, 이를 위해 구직등록을 하고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빙을 고용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고용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직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면 구직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광주 동구청 영상회의실에서 지역 중장년 주민들이 인생 3모작 설계를 위한 생애경력설계서비스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동구청 영상회의실에서 지역 중장년 주민들이 인생 3모작 설계를 위한 생애경력설계서비스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부의 ‘워크넷’을 방문하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안내받을 수 있다. ‘재도약 프로그램’, ‘생애경력설계 프로그램’, ‘성실 프로그램’ 등의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인천 경영자총연합회에서는 인천지역 구직자를 위해 30시간짜리 ‘신중년 생애경력설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생겨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에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또한 서로 구직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구직활동도 할 수 있다.
 
내가 지난주 북한산 등산을 하면서 느낀 것 있다. 평평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옆에 세 그룹의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라 그날 그곳에서 처음 만나 함께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정말 여성은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보니 혼자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은퇴 후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면 재취업해 직장동료를 만들거나 같은 취미의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자원봉사활동도 방법이다. 이런 활동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은퇴 후 행복, 좋은 인간관계에서 나와
 
몇 년 전 TED 토크에서 하버드대 로버트 왈딩어 교수가 75년 동안 7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의 대상은 1938년 하버드대학 2학년 학생 그룹과 보스턴의 빈곤층 청소년 그룹이었다. 지금 대부분 90대가 된 이들은 60명 정도가 생존해 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좋은 인간관계’다. 이 연구로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혼자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가진 사람(가족, 친구, 이웃)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오래 살았다. 둘째, 관계의 숫자가 아닌 관계의 질이 중요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이혼하는 것보다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건강한 80대가 50대에 어떤 상태였는가를 살펴봤더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셋째, 인간관계는 뇌의 건강도 지켜주었다. 은퇴 후 행복한 사람은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었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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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필진

[박영재의 은퇴와 Jobs] 잘나가는 광고인이었다가 IMF때 35세에 강제로 잘려 일찌감치 백수생활을 경험했다. 이른 나이에 험한 꼴을 당한 뒤 월급쟁이에 염증을 느끼고 PC방 창업, 보험설계사 등 자영업 세계를 전전했다. 지금은 저술과 강의를 통해 은퇴의 노하우와 정보를 제공한다. 좋아하는, 평생 할 수 있는 일, 평생 현역으로 사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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