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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85억 약정서에 발목 잡힌 1조3000억 초고층 아파트
안장원 기자 사진
안장원 중앙일보 부동산팀장 ahnjw@joongang.co.kr

13년 전 85억 약정서에 발목 잡힌 1조3000억 초고층 아파트

중앙일보 2019.04.13 05:10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내 범어네거리 일대는 부동산 개발 노른자위이고 광장이기도 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한국-토고 경기 때 5만여명이 몰려 열띤 응원을 했다. [중앙포토]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내 범어네거리 일대는 부동산 개발 노른자위이고 광장이기도 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한국-토고 경기 때 5만여명이 몰려 열띤 응원을 했다. [중앙포토]

대구 동대구역에서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끔 머물던 수성관광호텔까지 남북으로 뻗은 10차로의 동대구로. 중간에 수성구 범어동 범어네거리가 나온다. 동서로 뻗은 달구벌대로와 교차로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이 지난다(범어역).
 
범어네거리는 30층 이상 최고 54층에 이르는 초고층 아파트들로 둘러싸여 있다. 54층 두산위브더제니스의 꼭대기 층에 대구에서 가장 비싼 집이 범어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용 273㎡로 지난해 17억4400만원이던 공시가격이 올해 20억원을 넘긴다(예정가격). 
 
범어네거리 동쪽으로 인기 학원가가 형성돼 있다.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릴 정도로 교통·교육·업무·문화의 중심지다. 범어네거리 일대는 수성구의 요지다.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와 인근 대치동 학원가 등으로 유명한 도곡동을 연상시킨다. ‘대구의 맨해튼’라고도 한다. 
 
주택 개발 사업지로 대구 최고 노른자위의 하나인 이 일대가 요즘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시끄럽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경기가 끓어오를 때 한 장의 약정서로 시작된 주택 개발의 13년 흑역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대구 수성구 일대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무렵인 2005년 범어네거리 모습. 자료: 수성구청

대구 수성구 일대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무렵인 2005년 범어네거리 모습. 자료: 수성구청

2006년 2월 고급주택 시행사 박모 회장의 눈에도 범어동은 투자 가치가 높게 보였다. 그는 범어네거리 동쪽 편에 주택개발사업을 하려는 대구지역 시행사인 보경씨엔씨에 85억원을 투자했다. 
 
이 돈은 보경씨엔씨가 매입하려던 이 일대 땅 지주들에게 계약금으로 들어갔다. 보경씨엔씨는 두 달 이내에 50억원을 더한 135억원을 박회장에게 돌려주겠다는 투자약정을 체결했다. 박 회장은 이 회사가 소유권을 확보한 한 개 필지 지분(6분의 1)에 인근 다른 두 필지와 공동으로 채권최고액 135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그 중 한 개 필지(6분의 1)가 지난달 말 경매에서 총 101억원(17억원이 6분의 1 지분)에 낙찰됐다.  
 
보경씨엔씨는 46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다. 사업지에 있던 옛 우방 견본주택 부지 2000여㎡도 342억원에 샀다. 
 
그 이전 해인 2005년 수성구는 초고층 주상복합 개발 붐이었다. 두산위브더제니스가 2005년 12월 분양했다. 현재 대구 최고층으로 2007년 분양한 수성SK리더스뷰(57층)가 인근 두산동에 개발 중이었다.  
 
보경씨엔씨는 제날짜에 135억원을 지급하지 못하자 변제기일을 17일 더 연장해달라며 다시 23억여원을 추가한 158억2500만원을 주겠다는 각서와 약속어음을 썼다. 박 회장은 이 회사의 땅 2개 필지에 추가로 23억25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보경씨엔씨의 땅 3개 필지 근저당 설정 금액이 총 158억2500만원이었다.  
 
그러나 보경씨엔씨는 한 푼도 갚지 못했고 2007년 3월 부경산업개발에 흡수합병돼 해산했다.  
 
업계는 보경씨엔씨가 사업부지 상당 부분의 토지를 확보해 PF(개발사업) 대출을 받아 갚으려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본다.  
 
박 회장은 소송을 제기해 보경씨엔씨의 권리·의무를 승계한 부경산업개발이 158억2500만원과 그 간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2016년 받았다. 박 회장 측은 아직도 돈을 받지 못했다며 법원에서 지급하라고 판결한 지연손해금까지 합치면 금액이 총 321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인 2005년 범어네거리. 자료: 수성구청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인 2005년 범어네거리. 자료: 수성구청

수도권과 달리 지방 집값이 뛰던 2014년 무렵 대구에 거셌던 지역주택조합 바람이 보경씨엔씨가 눈독을 들인 이 땅에도 불었다. 2015년 수성구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대구에서 추진 중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장 28곳 중 절반에 가까운 12곳이 수성구였다.  
 
조합추진위가 만들어져 ‘라팰리스1’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조합원을 모집했다. 전용 84㎡ 조합원 분양가가 4억4000만~4억6000만원이었다. 주변 시세보다 1억원가량이나 저렴했다. 
 
2015년 6월 1200여명으로 조합이 설립됐다. 이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합 등의 자금 유용 의혹, 자금난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업계가 예상한 수준보다 너무 낮은 분양가로 조합원을 모집한 바람에 토지 확보 자금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바뀌었고 새 조합 집행부는 이전 조합장 등을 횡령 등으로 고소한 상태다.  

 
조합은 지난해 8월 사업 부지의 95% 이상 소유권을 확보하고 사업승인을 받았다. 건립 규모가 대구 최고층인 59층 아파트 1340가구(전용 84~102㎡)와 오피스텔 528실(전용 78~84㎡) 총 1868가구다. 공사 기간은 올해 4월부터 2023년 7월까지 4년 4개월 예정돼 있었다.  
 
조합 설립 이후 사업이 길어진 바람에 사업비가 급증했다. 사업 승인 때 예상 사업비가 1조2222억원이었는데 지난달 변경한 계획에 따르면 1조3153억원으로 900억원 정도 더 늘었다. 조합원 분양과 일반분양 수입으로 모두 충당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모집 당시 업계 우려대로 조합원 분담금이 크게 늘었다. 조합원당 2억9000만원을 더 내야 해 실제 분양가는 7억3000만~7억5000만원이다.  
 
순탄하지 않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중견건설업체인 아이에스동서가 끼어들었다. 2017년 시공사로 정해졌다. 아이에스동서는 당시 조합의 토지 확보 자금 2000억원을 지급보증했다. 처음엔 단순 시공사로 참여했으나 조합원이 당초 분양가에서 추가로 낼 2억9000만원을 확정 분담금으로 정하고 손익을 떠안기로 했다.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은 사업승인을 받아 ‘9부 능선’을 넘었는데 나머지 토지 소유권 확보 과정에서 암초를 만났다. 박 회장이 보경씨엔씨에 근저당을 설정한 3개 필지 때문이다. 박 회장은 원금만이라도 찾겠다며 85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애초에 자신의 돈으로 이 일대에 주택 개발 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에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은 보경씨엔씨의 채무는 자신과 무관하기 때문에 땅 가치보다 턱없이 비싼 금액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개 땅의 감정가액은 10억원 정도다.  
 
땅값 협상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면 조합이 제기한 매도청구소송 등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초고층 건물들이 몰려 있는 현재 범어네거리. 사진 가운데 노란색 점선 부분이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 사업장.

초고층 건물들이 몰려 있는 현재 범어네거리. 사진 가운데 노란색 점선 부분이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 사업장.

문제는 시간이다. 조합과 박 회장 간 줄다리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사업 기간이 길어져 사업비가 늘어난다. 조합은 한 달 금융비용이 15억원이라고 말한다.  
 
지금 줄다리기가 해결되더라도 누구든 함박웃음을 짓기 힘들다. 박 회장은 85억원을 받더라도 85억원의 13년 치 이자는 버리는 것이어서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보고 물러나는 셈이다. 조합원들은 대구의 랜드마크가 될 아파트를 손에 쥐지만 당초 예상보다 훨씬 늘어난 사업비 부담을 안는다. 
 
주변 시세보다 1억원 정도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해도 그동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애를 태웠다. 
 
시공사인 아이에스동서도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 때문이다. 투기과열지구인 수성구도 지난해 4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고분양가 관리 지역’에 들어갔다. 분양 직전 1년 내 최고 분양가보다 더 높게 받을 수 없다. 
 
1년 내 최고 분양가는 지난해 5월 힐스테이트 범어 3.3㎡당 2058만원이다. 아이에스동서가 시공사로 참여할 땐 수성구가 고분양가 관리 지역이 아니었다.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 사업 성공으로 가장 크게 웃을 사람은 일반분양분 당첨자다. 일반분양가가 3.3㎡당 2058만원이면 주변 시세(힐스테이트 범어 분양권, 2500만원)보다 3.3㎡당 500만원가량, 조합원 분양가(2100만원)보다도 3.3㎡당 50만원 정도 싸다. 전용 84㎡의 경우 일반분양가가 7억1000만원, 주변 시세 8억6000만원, 조합원 분양가 7억3000만원 선이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지만 만에 하나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무산되면 아무도 웃지 못한다. 박 회장은 지난 경매로 받을 17억원과 별 쓸모없는 작은 땅 두 필지만 남는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낸 2억5000만원 정도씩의 분담금을 날린다. 지급보증한 아이에스동서도 타격을 받는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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