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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삽질일기] 스캐이캐슬에서 떨려난 부추의 반전

중앙일보 2019.04.13 05:05
버드나무 수꽃. 암꽃보다 화려하다. 회초리로 이만한 나무가 없다. 그래서일까, 귀신이 싫어하는 나무란다.

버드나무 수꽃. 암꽃보다 화려하다. 회초리로 이만한 나무가 없다. 그래서일까, 귀신이 싫어하는 나무란다.

 지금은 여럿이 함께 하지만 16년을 혼자 농사지었다. 밭을 네 번 옮기는 동안 내내 그랬다. 처음에 얻은 밭은 3.3㎡(5평)짜리 하나다. 땅이 작으니 쌈채소 몇 가지만 심으면 밭이 꽉 찼다. 삽질 이력이 몇 년 붙으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하나를 더 얻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마냥 늘릴 수는 없었다. 토요일 오전에나 시간을 낼 수 있으니 밭이 크면 힘에 부치고 관리가 어려워서다. 5년 전부터 삽질 동무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푸성귀철인 5,6월과 9,10월이면 주말마다 밭은 북적댄다. 한번은 혼사에 갔던 친구 이십여 명이 몰려와 농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떠들썩하게 뒤풀이를 했다. 이렇게 밭을 드나들며 놀던 친구들이나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슬금슬금 발을 걸치기 시작했다. 올해는 열 명이다. 아홉은 공동경작을 하고 하나는 내 밭 옆에서 식구들끼리 한다.  
주말농장에서는 밭을 일구고 씨를 심고 나면 큰 농기구 쓸 일이 별로 없다. 호미나 낫 정도를 많이 쓴다

주말농장에서는 밭을 일구고 씨를 심고 나면 큰 농기구 쓸 일이 별로 없다. 호미나 낫 정도를 많이 쓴다

 
혼자였을 때는 산 쪽에 붙은 밭을 분양받았다. 가장자리라 옆 밭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물고랑 쪽을 내 맘대로 쓸 수가 있으니 여러모로 편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가을 되니 점심 무렵부터 그늘이 졌다. 당연히 김장채소가 시원찮았다. 양지 바른 쪽, 흙이 포실 포실한 밭은 오래전부터 성골, 즉 동네 터줏대감들 차지였다. 농장 최대 계파가 되고 쥔장과 허물이 없어지니 덩달아 내 신분도 상승했다. 우리가 원하는 땅을 얻었고, 발언권이 커졌으니 부곡에 살다가 진골까지 된 셈이다. 땅덩이가 커지니 이래저래 편하다. 웬만한 작물은 다 심을 수 있어 씨앗 26가지를 뿌렸으니 말이다.  
여러 종류의 씨를 뿌려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헷갈린다. 씨앗봉지를 흙속에 꾹 눌러 놓으면 간단.

여러 종류의 씨를 뿌려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헷갈린다. 씨앗봉지를 흙속에 꾹 눌러 놓으면 간단.

올해는 감자를 심지 않았다. 감자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아 누구나 기르기 쉽다. 하지만 유월 말 하지 즈음 캘 때가 되면 어디서나 싼값에 구할 수 있으니 투자 대비 효과가 별로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찾는 분질 씨감자가 없어서다.  
 
분질 감자는 전분함량이 많고, 점질 감자는 전분이 적다. 점질 품종인 대서·대지는 감자칩이나 튀김을 만들 때 쓴다. 두백·남작·하령은 분질 품종이다. 감자탕이나 생선조림에 넣으면 제격이다. 쥔장이 가져다 놓은 씨감자는 점질과 분질을 고루 가진 수미다. 시장에 나오는 감자의 팔 할을 차지한다. 물론 수미도 맛있지만 그래도 솥에서 꺼내 쪼갤 때 분이 팍팍 나야 감자 아닌가.
 
밭둑에서는 머위가 꽃대를 내밀었다. 참나물 새순도 씩씩하게 고개를 들었다. 본래 밭에 있던 걸 옮겨 심었더니 부지런히 새끼를 쳐나가고 있다. 내 밭에서는 여러해살이 작물을 키울 수 없다. 매해 삼월이면 경운기로 몽땅 갈아엎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금치·대파·마늘처럼 겨울을 나야 제 맛인 채소는 그림의 떡이다. 머위와 참나물이 보따리를 싸서 이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종류의 씨를 뿌려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헷갈린다. 씨앗봉지를 흙속에 꾹 눌러 놓으면 간단.

여러 종류의 씨를 뿌려 표시를 해놓지 않으면 헷갈린다. 씨앗봉지를 흙속에 꾹 눌러 놓으면 간단.

그 덕에 횡재도 했다. 밭둑 옆 소나무 숲 아래서 찾은 부추밭이다. 얘들의 본적지는 안온한 밭인데 어느 해 가을에 이리로 왔다. 누구네 밭에서인지 김장거리를 심으며 거추장스럽다고 뽑아서 밭둑 너머로 던져버린 것. 스카이 캐슬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은 꼴이다. 요놈들이 놀랍게도 수풀 위에서 겨울을 나면서도 얼어 죽지 않았다. 
 
소나무 아래 있는 나만의 비밀창고 부추밭. 낙엽 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우르르 목을 내민다.

소나무 아래 있는 나만의 비밀창고 부추밭. 낙엽 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우르르 목을 내민다.

 
뿌리를 다시 내리고 겨울을 났는지, 겨울을 나고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지만 봄마다 두툼한 순을 올린다. 잎이 하도 탐스럽고 윤이 나 지난해는 몇 뿌리 캐다가 베란다 화분에 심어놓았다. 굳이 밭 아니라도 집에서 길러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날이 풀리며 한 달 전쯤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애걔, 잎이 하늘하늘하다못해 흐늘흐늘하다. 소나무 아래서 크는 부추가 손가락이라면 이건 젓가락이다. 바깥에 놔두면 알아서 자라는 것을, 욕심이 문제다.  
친구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부추밭이다. 이렇게 공개하니 이제는 먼저 훑어가는 사람이 임자다. 그래도 상관없다. 잘라내도 보름이면 또 먹을 만큼 자란다.  
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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