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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취리히호 품은 산중 호텔… 클린턴·푸틴도 하룻밤

중앙선데이 2019.04.13 01:00 631호 24면 지면보기
 서현정의 월드 베스트 호텔&레스토랑 - 스위스 더 돌더 그랜드 호텔  
 스위스 취리히의 '더 돌더 그랜드 호텔' 테라스 전망. 취리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사진 서현정]

스위스 취리히의 '더 돌더 그랜드 호텔' 테라스 전망. 취리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사진 서현정]

호텔은 여행 중에 머무는 숙소이다. 하지만 때로 호텔은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더 돌더 그랜드(The Dolder Grand)’ 호텔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다.
  

고즈넉한 숲속서 시내·호수 한눈에
워홀·달리 등 거장 미술품도 100점
1899년 오픈, 5000억 들여 새단장
‘호텔이 여행 목적 되는 핫플레이스’

취리히 도심을 벗어나 동네 버스도 끝나는 변두리까지 가서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시내에 묵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바로 그 순간 호텔이 나타난다. 호텔에 들어서면 모든 우려는 깔끔히 사라진다.
 '더 돌더 그랜드' 스위트룸 내부 모습. 뻥 뚫린 창 너머로 스위스 알프스의 전경이 펼쳐진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더 돌더 그랜드' 스위트룸 내부 모습. 뻥 뚫린 창 너머로 스위스 알프스의 전경이 펼쳐진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무엇보다 탁 트인 전망이 압권이다. 산자락에서 내려다보는 취리히 호수와 시내 전경에 저 멀리 알프스 산맥까지 더해져, 나도 모르게 큰 숨을 쉬게 된다. 여기에 광활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여유로운 부지가 있다. 호텔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깊은 숲을 따라 걷는 조깅 코스와 트레킹 코스가 있고, 9홀 골프 코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 스위스 최고 브랜드 ‘라프레리’에서 운영하는 전문 스파 역시 약 4000㎡에 이를 정도다. 그래서 이곳은 호텔보다 ‘시티 리조트’로 불리기를 더 원한다. 자연 속에서 힐링이 가능한 곳이라는 뜻이겠다. 호텔의 숲은 알프스까지 이어진다.  
 '더 돌더 그랜드' 로비. 예술작품으로 그득하다. 데스크 위에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더 돌더 그랜드' 로비. 예술작품으로 그득하다. 데스크 위에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다음으로는 호텔의 예술작품들. 호텔 입구에 들어서며 호안 미로의 대형 조각을 만날 때만 해도, 유명작가의 원작이 신기할 뿐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기다리며 로비를 둘러보면 11m 크기의 앤디 워홀의 ‘커다란 회고의 그림(Big Retrospective Painting)’을 비롯해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의 작품들이 호텔의 거의 모든 벽과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텔에는 90명이 넘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더 돌더 그랜드' 체크인 카운터 옆에 설치된 예술 작품. 지친 여행자의 모습을 위트 있게 재현했다 [사진 서현정]

'더 돌더 그랜드' 체크인 카운터 옆에 설치된 예술 작품. 지친 여행자의 모습을 위트 있게 재현했다 [사진 서현정]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진품일까 의심스럽고, 가격도 감히 가늠해볼 수가 없다. 키스 해링의 대형 조각을 시작으로 메인 레스토랑 입구에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스파 테라스에는 풍만한 신체 표현으로 유명한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이 있다. 애니메이션 같은 화풍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 타카시 무라카미와 르네 마그리트, 니키 생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트 있는 전시도 많다. 이를테면 리셉션 데스크 옆의 ‘트래블러’는 여행에 지쳐 길바닥에 기대앉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어서 방문객을 놀랜다. 호텔에서 빌려주는 전용 아이패드를 들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전문 미술관이 따로 없다.  
 '더 돌더 그랜드'의 2층 로비. 100년이 넘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더 돌더 그랜드'의 2층 로비. 100년이 넘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 더 돌더 그랜드]

더 돌더 그랜드가 문을 연 것은 1899년이다. 처음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전통가옥 한 동으로 시작했다. 최근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04년부터 4년에 걸친 대공사 이후다. 오픈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호텔로 명성을 이어왔지만, 호텔 측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대공사에 초청된 건축가는 영국의 노만 포스터. 총 소요 비용은 약 440억4000스위스프랑, 우리 돈으로 5000억 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전통가옥 본채는 손질해 남겨두고 골프 윙과 스파 윙, 두 개의 모던 건축물을 추가했다. 건물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2008년 4월 재오픈과 함께 4일간 행사를 열었을 때, 약 1만2000명이 새로운 돌더 그랜드를 보겠다고 찾아왔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동안 더 돌더 그랜드를 방문한 명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왕족, 비즈니스 맨, 영화계 인사 등 수많은 스타가 이곳을 찾았다. 특히 정치인의 미팅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키신저, 고르바초프, 클린턴 부부, 사르코지, 푸틴, 넬슨 만델라 등 현대 정치사의 중요 인물 중 돌더를 찾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다. 숲속에 자리 잡은 자연의 여유와, 도심과 떨어진 거리에서 비롯된 약간은 비밀스러운 느낌이 그렇게 많은 정치인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 
 
여행산업이 발전하면서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 호텔들이 세계 곳곳에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반면에 아무리 아름답고 특별해도 숙소에 불과하다면 굳이 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나 생각을 들게 하는 곳도 있다. 더 돌더 그랜드는 다르다. 이곳에서만의 새로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현정 여행 칼럼니스트 shj@tourmedici.com  
인류학 박사이자 고품격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대표. 흥미진진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품격 있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사가 없어 아예 여행사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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