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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고 또 풀어도 반짝 효과뿐, 지구촌 만성 불황 먹구름

중앙선데이 2019.04.13 00:21 631호 15면 지면보기
‘글로벌 경제의 둔화 동조화’.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이번 주 내놓은 경고다. 선진과 신흥 경제권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그래프). 그 바람에 투자와 고용이 지지부진하면서 소비도 주춤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경기 둔화에 동의했다. 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 세계 경제가 3.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초 전망치는 3.5%였다. 한국은 기존 전망치인 2.6%를 유지했다. 브루킹스나 IMF가 지목한 글로벌 경제의 둔화 원인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다. 무역전쟁과 지정학적인 불안이다. 모두 한국 경제와 밀접한 무역에 타격을 줄 만한 불안 요인들이다.
 
주요 국가들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이 긴축을 중단하고 세계경제가 불안하면 엔화 가치가 급등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 돈이 안전지대를 찾아 이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때 일본 엔화나 스위스 프랑화, 금 등의 가격이 강세를 보였다. 엔화 강세는 일본은행(BOJ)으로서는 달갑지 않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강력한 양적완화(QE)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10일 밝혔다. 월가 전문가들은 여차하면 구로다 총재가 ‘QE 시즌3’를 내놓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QE 시즌1은 2001년에, QE 시즌2는 2013년에 시작됐다. 대만은 한국처럼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대만은 자국 기업이 중국 본토에 지은 생산공장을 철수시켜 다시 대만에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산에 부과되는 미국 등의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Fed)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엔 기준금리 동결이 아니다. 인하를 요구하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기준금리 인하를 언급했다. 여기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인하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올 1월 파월은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했다. 지난해 트럼프의 압박이 인상 중단에 한몫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금융회사들이 기업과 가계에 장기 대출을 많이 해주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TLTRO)을 최근 연장했다.
 
톰슨로이터는 “각국이 지금 실시하는 정책들은 선제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브루킹스 보고서의 집필자인 코넬대 에스워 프라사드 교수(경제학)는 보고서에서 “경제 성장을 자극할 거시경제 정책 수단이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국가 부채가 너무 많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나라 기준금리는 사실상 제로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하 등 “통상적인 통화정책이 시원찮다”고 프라사드 교수는 말했다. 그렇다고 QE 등 비통상적인 정책을 쓰기도 마뜩잖다. 그는 “QE 등이 적잖은 위험 요인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효과도 제대로 내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바람에 ‘서머스의 경고’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전 미 재무장관 래리 서버스가 2013년 IMF 경제포럼에서 경고한 ‘만성적인(구조조적인) 불황(Secular Stagnation)’이다. 서머스는 “기준금리 인하 등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일시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를 자극할 뿐”이라며 “통화완화가 중단되면 경제가 다시 둔화하는 만성적인 불황이 우리 시대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당시 서머스의 경고는 미 경제가 활력을 보인 2017~18년에 거의 잊혀졌다. 그런데 지난달 서머스가 다시 만성적 불황을 경고하고 나왔다. 여기에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맞장구를 쳤다. 울프는 “주요 국가가 오랜 기간 의지한 통화정책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바람에 만성적인 불황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반론이 만만찮다. 국제결제은행(BIS) 경제통화국장인 클라우디오 보리오는 최근 보고서에서 “만성적인 불황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실 만성적 불황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38년이었다. 미 경제가 대공황에서 회복됐다가 다시 침체(1937년)를 겪은 직후다. 당시 알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는 “기술 혁신과 인력 부족으로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화정책 작동불능을 경고한 21세기 버전 만성적 불황론과는 사뭇 다르다. 만성적 불황이란 말이 대침체(Great Recession) 때문에 80여 년 만에 되살아 난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만성적 불황 여부를 놓고 입씨름하고 있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움직임이 시작됐다. 미 금융그룹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각종 펀드들이 성장 과실을 겨냥한 주식보다 성장률이 하락할 때 손실이 적은 자산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며 “돈이 만성적 불황을 대비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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