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땀범벅 무대서 진짜 내 모습 찾아, 아이돌 때 없던 열정이…

중앙선데이 2019.04.13 00:21 631호 19면 지면보기
[아티스트 라운지] 배우로 거듭난 ‘원조 아이돌’ 오종혁
‘줄리엣이 되고 싶었던 햄릿’.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발칙하게 비틀어 큰 호응을 얻었던 서울시극단의 ‘함익’이 돌아왔다. 복수심과 광기에 휩싸인 왕자 햄릿을 과감히 여자로 치환해 동시대적 공감을 이끌어내며 고전 재해석의 새 장을 연 무대다. 3년 만의 재연에 눈길을 끄는 건 아이돌 출신 배우 오종혁(36)의 합류다. 오종혁은 ‘꽃미남’이란 단어의 원조로, 1999년 밴드 클릭비로 데뷔해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제 뮤지컬과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그가 ‘함익’ 재공연 소식을 듣고 손을 번쩍 들었다.
 

연극 ‘함익’ 출연
선배들 헌신적인 연기 보고 놀라
내가 정말로 못났었구나 깨달아

조연이라고 부족하다 생각 안 해
언젠가 햄릿 역할 꼭 해보고 싶어

“선배들이 평소에 김광보 연출님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셔서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제가 고전을 하기엔 부족하다 생각 하는데, ‘함익’은 현대극으로 변화를 준 고전이니 직간접적으로 ‘햄릿’을 겪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자신감은 없었지만 도전한 거죠.”
 
오종혁이 출연하는 연극 ‘함익’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2일부터 28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서울시극단]

오종혁이 출연하는 연극 ‘함익’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2일부터 28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서울시극단]

 
20년 전 꽃미남 밴드 ‘클릭비’로 데뷔
 
후드티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오종혁은 어린 소년 같았다. “빠른 83이라 사회 나이로 벌써 서른여덟”이라고 수줍어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무대와 작품에 대한 진솔한 사랑은 가슴에 오랫동안 담아둔 듯했다. 그가 맡은 역은 재벌가 출신의 연극과 여교수 ‘함익’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는 제자 ‘연우’다. "주인공이 아니라고 부족하다는 생각은 없어요. 연우라는 캐릭터가 함익이라는 어두운 인물이 가진 내면의 밝은 면, 여자다워지고 싶은 면처럼 표출하지 못했던 성격을 드러내는 창구거든요.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작품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 중이죠.”
 
‘함익’은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의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하나다. 재기 넘치는 젊은 극작가 김은성이 이 ‘복수극의 원조’를 모든 걸 가졌으나 사랑 한 번 못 해본 여인의 비극으로 비틀었다. “굉장히 용기 있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여성을 너무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반응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사실 연극에 대한 수준이 낮아요. 연기 전공한 배우들이 거쳐온 고전을 하나도 못 거쳤으니까요. 햄릿에 대한 로망요? 제 앞에 놓여지면 도망갈 것 같아요. 역대로 대단하신 분들이 해오셨는데 제가 비교대상이 될까요. 하지만 언젠간 꼭 해보고 싶네요.”
 
그는 뮤지컬 ‘온에어’(2008) 이후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무대를 지키고 있다.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 배우가 되는 일은 흔하지만 정통 연극에 도전하는 일은 흔치 않다. “선배님들 연극을 보러 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2시간 동안 마이크도 없이 너무나 멋진 연기를 보여주니까요. 폼 잡아서 멋있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멋있게 보여지는 거죠. 초반엔 너무 어려웠어요. 마이크 없이 멀리까지 전달하는 게 큰 과제였죠. 조금씩 극복해 가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지금은 사실 노래가 더 부담스러워졌어요.(웃음)”
 
원조 꽃미남 아이돌 출신으로서 연극 무대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정반대란다. “오히려 저쪽에서 힘들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문제아였는데(웃음), 땡땡이치고 나오다 길거리 캐스팅됐거든요. 엉겁결에 시작해 힘들어 하다가 익숙해질 때쯤 팀이 해체됐어요. 좀 쉬고 나서 솔로활동을 시작하며 방송국에 갔는데, 신인 때 워낙 친하게 따르던 FD 형이 보이길래 너무 반가워 ‘형!’하고 불렀거든요. PD가 된 그 형이 많은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여 제게 거리를 두는 모습에 너무 상처를 받았어요. 그냥 순수한 마음이었거든요.”
 
냉정한 연예계에 상처받고 힘들어할 무렵 공연계 러브콜을 받았다. 역시 ‘엉겹결에’ 시작한 공연 한 편에서 만난 사람들의 에너지가 “감당 안 될 정도로 좋았다”고. “처음엔 이 기운과 열정이 이해가 안 가더군요. 저 나이에 이 돈 받고 어떻게 즐겁지? 평생 처음 보는 열정이었죠. 저는 연습생 때도 그런 열정 없었어요. 시켜준다고 해서 왔는데 연습하라니까 하고,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의구심만 있었거든요. 근데 이 친구들은 공연이 올라가든 못 올라가든 너무 즐기는 거예요. 내가 진짜 못났었구나 깨달았어요. 같이 땀흘리며 어울리다 보니 너무 좋고, 한번 더 해보고 싶었죠. 지금도 그래요. 오히려 저쪽에서 모자랐던 부분 여기서 계속 채워나가고 있어요.”
 
 
“이제 좀 더 어른스러운 역할 맡고 싶어”
 
최근 잘나가던 아이돌 스타들의 일탈은 연예계 화려함 뒤의 그늘을 실감케 한다. 오종혁도 아이돌 시절 ‘진짜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단다. “제 별명이 ‘종구’예요. 촌스럽고 멋없는 성격인데 테리우스처럼 보여야 되니까 말하지 말고 그냥 웃으며 손만 흔들어주라더군요. 여자 같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긴 머리를 자르고 싶었는데, 2집 때 반정도 치고 가니 팬이 반이 떨어져나갔다며 다시 기르라더군요.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있어야 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어느덧 30대 중반에 무대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소년 같은 이미지 때문에 10대 역할까지 주어지는 상황이다.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어요. 이제 좀더 어른스러운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인데, 아직 피부에 뭐가 나고 있어서 어려 보이나 봐요.(웃음) 제겐 극복해야할 과제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