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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선물’ 죽은 쥐에 화들짝…단독살이 봄날은 간다

중앙선데이 2019.04.13 00:20 631호 27면 지면보기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박태기나무에 걸려 있는 육각형 거미줄이 봄볕에 반짝이고 있다. [사진 김동률]

박태기나무에 걸려 있는 육각형 거미줄이 봄볕에 반짝이고 있다. [사진 김동률]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던 아내가 “끼약”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새파랗게 질려 들어 왔다. 엄청 놀란 표정이다. 황급히 뛰쳐나간 나도 기겁했다. 현관 입구에 목이 잘린 쥐 한 마리가 피투성이로 놓여 있었다. 경험이 있는 시골 출신 나도 놀랐는데 처음 목격한 아내가 기절초풍, 놀란 것은 당연하다. 길고양이의 선물이다.
 
마당에는 길고양이 두 마리가 제집인 양 놀고 있다. 문을 열면 잽싸게 도망가거나 나무데크 밑으로 숨는다. 이웃에 캣맘이 살고 있어 밥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영양상태가 좋은지 비교적 통통하다.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안 어디 새끼를 낳을까 봐 걱정이다. 건사할 자신이 없고 또 집 강아지가 결사적으로 짖어 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과 달리 가끔 싫은 기색을 한다. 그럴 경우 여지없이 현관 앞에 선물을 갖다 놓는다. 쥐도 있고 피투성이 산비둘기도 있다. 이번에 알았다. 고양이들이 인간에게 잘 보이려고 선물로 둔다는 것을.
 
이 정도는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문제는 밤이다. 대개 단독의 경우 사설 경비업체를 이용하게 된다. 적잖은 돈이 나가는 게 편치는 않지만 아파트에 살 때의 관리비 정도로 여기며 받아들이게 된다. 사건은 깊은 밤에 일어난다. 경비장치를 가동해 놓고 자는 오밤중 난데없이 요란하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십시오”라는 섬뜩한 경고와 함께 비상벨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이쯤 되면 웬만한 강심장도 섬뜩해진다. 겁에 질린 아내와 딸을 안심시키며 아들과 함께 야구방망이를 들고 바깥을 살피러 나간다. 엄동설한 겨울에는 정말 고통스럽다. 긴장감 속에 살펴보지만 별일 없다. 이때쯤 되면 보안업체 직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다.
 
폐쇄회로(CC)TV를 판독해 보면 늘 같은 결론이다. 길고양이가 적외선을 건드려 그렇다는 것이다. 맥이 탁 풀린다.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한껏 놀란 가슴, 다시 잠자기는 글렀다. 두세 번 겪고서는 이젠 경고음이 울려도 나가지 않는다. 외려 고양이짓 같으니 오지 말라고 경비업체에 먼저 전화하게 된다. 방법이 없다. 그저 길고양이 처분에 맡길 뿐이다.
 
벌레는 단독 삶에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마당에서 만나게 되는 벌레는 큰 문제 없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해 준다. 텃밭에서 마주친 지렁이는 “흙이 기름지다”는 증거인 만큼 느긋해진다. 마당구석 박태기나무에 걸려 있는 거미줄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침 이슬에는 영롱한 무지갯빛이다. 아름답다. 거미줄은 육각형이다. 변이 여섯 개, 당연히 각도 여섯 개다. 정육각형은 견고하면서도 삼각형보다 재료가 덜 드는 효율적인 도형으로 알려져 있다. 거미줄이 정육각형 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미물이라고 함부로 볼 게 아니다. 물도 얼음이 되면 육각형 모양이고 눈을 확대하면 육각형의 결정 모양을 볼 수 있다. 거미줄에도 깊은 이치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물론 거미줄에 죽어 가는 파리나 나방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이른 새벽 마당 구석 노란 프리지아가 말라 죽은 지난 가을 국화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 김동률]

이른 새벽 마당 구석 노란 프리지아가 말라 죽은 지난 가을 국화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 김동률]

그러나 집안 벌레는 얘기가 다르다. 목재로 마감된 실내에는 꼽등이, 집게벌레 등등 크고 작은 벌레들이 출몰한다. 하루가 멀다고 아이들 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촌사람인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벌레에 집안이 떠나갈 듯 호들갑이다. 뭐라 한마디 하려 하면 대뜸 아내부터 아이들 편이다. 벌레 퇴치를 위해 별별 해충약을 구입해 봤지만 벌레들 대응능력 또한 만만찮다. 지인이 계피가 효과 있다고 알려 왔다. 그래서 집 안 구석구석에는 계피껍질이 숨겨져 있다. 베트남 수입품, 비싸지 않아 충분히 구입했다. 가까이 가면 계피향이 코를 찌른다. 그 순간 나는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아주 유년 시절 어머니가 마당에서 한약을 달이면 계피 냄새가 났다. 약탕기를 덮은 창호지 헤진 틈으로 번져 나오던 신비스럽던 계피향, 그때 어머니는 참으로 고왔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온 일곱 살의 내가 치맛자락을 잡으면 탕기를 끓이다 말고 안방 벽장에 숨겨 둔 마름모꼴 하얀 박하사탕을 한 개 쥐여 주었다. 그런 어머니는 혼자 있을 땐 늘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설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그 누가 알아주나요”를 불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제강점기 가수 황금심이 불렀던 ‘알뜰한 당신’이란 노래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가끔 라디오에 등장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노래는 듣기 어렵다. 그때의 어머니는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었고 일곱 살 소년의 귀밑머리도 희끗희끗해졌다. 세월은 너무 빨라, 사월도 벌써 저만큼 가고 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던 그 시절은 간 곳 없고 벚꽃 엔딩 속에 문득 나는 슬프다. 그리고 요즘 들어 가끔 궁금하다. 어머니가 왜 그때 그리도 서러운 노래를 불렀는지.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다. 고려대,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졸업. 매체경영학 박사.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에세이가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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