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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오해

중앙선데이 2019.04.13 00:20 631호 31면 지면보기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지금 현재 베트남 최고의 인기 스타는 박항서 감독이다. 어디에 가나 사람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박 감독과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얻기 위해 줄을 선다. 박 감독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한국 회사들도 대박을 터뜨렸다. 베트남 국영방송은 박 감독을 201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정도다.
 
2018년 1월,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첫 대회인 아시아축구연맹 주최 청소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항서 매직이 일어나는 신호탄이었다. 그 후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4위를, 스즈키 컵에서 말레이시아를 격파하고 우승했다. 2019년 1월에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최고 성적이며, 한국도 베트남과 같은 8강이 최종 성적이었다. 그동안 베트남 국민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휘두르며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박 감독을 스포츠 한류를 세계에 전파한 선봉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 박 감독이 성공했을까? 언론에서는 박 감독의 리더십을 ‘파파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선수들을 지도한 결과 감동한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부상을 입은 선수에게 일등석 자리를 양보하거나 발을 직접 마사지해 준다는 소식도 들렸다. 선수를 신뢰하고, 믿고 기다릴 줄 알고, 이야기를 듣는 리더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런 이야기가 성공 비결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박 감독의 훌륭한 성품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 축구가 갑자기 놀랄만큼 성장한 비결이라고 하기는 부족하다. 기업이나 국가를 예로 들자면,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사장이나 대통령이 된다면 작은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회사나 국가가 갑자기 크게 잘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박 감독이 과거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서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던 코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 한국 축구계에서는 연줄이 중요했다. 축구협회를 어느 학교 출신이 장악하냐에 따라 감독과 대표팀의 구성이 크게 변했다. 그런데 히딩크는 한국 축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한국에 왔다.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그래서 히딩크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철저하게 객관적인 데이터에 의존했다. 20여개 항목으로 구분하여 선수들의 체력과 장단점을 측정하고 그 결과대로 선수들을 뽑은 것이다. 그 덕분에 그때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선수가 대표로 뽑힐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이터에 따라 훈련을 했다. 각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면서 선수들 자신이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훈련 덕분에 선수들의 기량이 놀랍도록 향상되었다. 즉 월드컵 4강의 기적은 과학적 리더십 또는 과학적 훈련의 결과다.
 
베트남에서 박 감독을 뽑은 이유는 박 감독이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코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감독도 부임 당시 베트남 축구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처럼 20여개 항목을 이용해서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했고, 그 결과에 따라 선수들을 공정하게 선발했다. 통일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베트남에는 남북 사이에 상당한 지역감정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쪽 출신이 감독이 되느냐에 따라 선수들의 구성도 크게 바뀌고, 고향이 다른 선수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다. 그런데 객관적인 데이터에 따라 팀을 선발하니 선수들의 불만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선수들을 대하니 선수들끼리도 점차 화합하게 되었을 것이라 볼 수 있다.
 
박 감독은 테스트 결과 선수들의 체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쌀국수를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식단을 대폭 바꿔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 각 선수들 마다 테스트 결과를 반영해 서로 다른 훈련을 시켰다. 이런 과학적 훈련의 결과가 성과를 발휘한 것이다. 박 감독도 ‘베트남에서 제가 거둔 성과는 가장 평범하게, 기본부터 철저히 챙기고 노력한 결과죠’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따라 정확한 처방을 내리고 실천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파파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성공의 비결이 파파 리더십뿐만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진 리더가 팀이나 기업 또는 국가를 이끌더라도, 그 리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어떻게 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한국의 모든 리더들이 명심하기 바란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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