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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부츠, 잠자는 미녀…에베레스트 ‘별’이 된 200여 명

중앙선데이 2019.04.13 00:02 631호 9면 지면보기
‘세계의 지붕’ 쓰레기 몸살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고빗사위인 힐러리 스텝을 오르는 등반가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중앙포토]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고빗사위인 힐러리 스텝을 오르는 등반가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중앙포토]

독일 여자, 그린 부츠, 잠자는 미녀….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시신 수습 거의 불가능
눈사태·추락 등 하산 중 사망 많아
이곳서 80㎏ 시신 얼면 150㎏ 돼
2차 희생 우려에 일일이 이송 못해

눈에 안 띄게 절벽으로 밀며 애도
박무택 돌무덤 안장, 장민 등 실종

이들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에베레스트(8848m)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등반가들이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톈징 노르게이가 초등한 이후 에베레스트를 오른 사람은 4000여 명. 하지만 200여 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채 최고봉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들의 시신은 쓰레기와 함께 처리 곤란한 대상이 됐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왜 에베레스트에 가느냐는 질문을 하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긴 조지 맬러리는 무려 95년 째 에베레스트에 있다. 1924년 6월 영국의 원정 대원이었던 맬러리는 동료 앤드류 어빙과 함께 정상을 향하다가 돌연 사라졌다. 맬러리는 어빙과 함께 묶었던 로프를 허리에 맨 채 1999년에 발견됐다. 어빙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한넬로르 슈마츠는 1979년 이후 같은 곳에 계속 앉아 있었다. 정상 등정 뒤 캠프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서 탈진해 더 이상 하산하지 못했다. 1990년대까지 그 모습으로 있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녀의 별명은 ‘독일 여자(The German Woman)’였다.
 
에베레스트 힐러리 스텝 근처에는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린 부츠’가 20년 가까이 이정표 역할을 했다. [중앙포토]

에베레스트 힐러리 스텝 근처에는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린 부츠’가 20년 가까이 이정표 역할을 했다. [중앙포토]

에베레스트 8500m 지점 바위 밑에는 일명 ‘그린 부츠(Green Boots)’가 있었다. 영국 BBC는 그 부츠의 주인공이 인도 등반가인 체왕 팔조르인데 1996년 ‘에베레스트 재앙’ 중에 희생된 8명 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린 부츠는 이정표가 됐다. 등반자들은 그린 부츠를 보면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시신 옆에서 잠깐 쉬었다 가기도 했다. 영국인 데이비드 샤프는 2006년 이곳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지나가던 40여 명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샤프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 등반가들의 윤리성이 논란이 됐다. 그린 부츠는 2014년 이후론 보이지 않는다. 눈사태에 파묻혔거나 강풍에 날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5월, 미국의 프랜시스 아르센티예프와 남편 세르게이는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면서 길이 엇갈렸다. 캠프에 먼저 도착한 세르게이는 아내가 없자 다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향했다. 프랜시스는 우크라이나 팀이 건네준 산소통으로 버티고 호주 팀의 도움을 받으며 사흘을 견뎠지만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없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프랜시스는 에베레스트에서 ‘잠자는 미녀(The Sleeping Beauty)’로 불렸다. 세르게이의 시신은 1년 뒤 프랜시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프랜시스 옆에는 남편이 쓰던 장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내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던 흔적이었다. 2007년 프랜시스를 다시 찾은 호주 팀은 그녀를 북벽 밑으로 밀며 애도를 표했다.
 
한국의 박무택·백준호·장민 등도 에베레스트에 있다. 박무택은 2004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 뒤 하산 중 부상을 당해 내려오지 못했다. 같은 원정대였던 장민과 백준호도 당시 숨졌다. 엄홍길 대장이 이듬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8750m 지점에서 박무택의 시신을 발견, 수습하다가 포기한 뒤 돌무덤에 안장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에베레스트에서의 사망 원인은 눈사태가 29%로 가장 많다. 추락이 23%로 그 뒤를 잇고 동상(11%), 고소 증세(10%) 순이다. 등정 중(20건)보다 하산 중(90건) 사망사고가 많다.  
 
200구가 넘는 시신들을 수습하고 이들의 명복을 빌어줄 묘안은 없을까. 일각에서는 “헬기를 이용해 수습하면 되지 않느냐” “썰매에 고정시켜 내려 보내면 되지 않느냐” “공동 묘역이라도 만들어라” 등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두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여섯 번째 8000m급 14개 봉우리 완등자인 김미곤 대장은 “해발 8000m에서 헬기 운항은 자살 행위”라며 “시야 확보가 어렵고 돌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6000m 안팎이 최대 접근 고도”라고 말했다.
 
8000m 이상 ‘죽음의 지대’에서는 산소가 해수면의 3분의1로 줄고 무게는 10배 무겁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48시간 이상 버티기 힘들다. BBC는 80㎏인 사람이 에베레스트에서 시신이 되어 얼면 150㎏이 된다고 보도했다. 김정배 블랙야크 익스트림 팀장은 “8000m에서 시신 한 구 내려 보내려면 열 명이 달라붙어도 어렵다. 썰매를 이용한다고 해도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곳에서 2차, 3차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신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돌무덤에 안장한다. 다른 원정대가 방치된 시신의 사진을 찍은 뒤 SNS 등에 올려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에베레스트에서 시신에 대해 애도를 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프랜시스의 경우처럼 눈에 띄지 않는 절벽 밑으로 밀어주는 것이다. 온난화로 인해 절벽으로 떨어진 시신들이 빙하와 눈에서 드러나는 것도 문제다. 셰르파들은 이런 시신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화장을 해주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첫 8000m급 14개 봉우리 완등자인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 우리나라 여성 중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지현옥(1999년 안나푸르나)은 아직도 히말라야에서 실종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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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히말라야=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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