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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제재 강공, 그 뒤엔 김정은 하노이 패착 두가지

중앙일보 2019.04.12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트럼프의 전방위 공세전략에 배수진으로 맞서는 김정은
밀리터리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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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를 놓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지막 담판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세전략이고, 김 위원장은 배수진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2번 합을 겨룬 데 이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과 김 위원장의 영변에 제한된 비핵화의 격차는 너무 크다. 북한이 가진 핵무기·핵물질을 모두 미국에 보내라는 ‘리비아+우크라이나’방식 비핵화라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김 위원장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날아갔다.  
  
미국은 예비적 강공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말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합의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한 뒤 회의장을 떴다. 김 위원장으로선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처음 듣는 핀잔이었다. 트럼프는 이 말을 지난 2일 공개했다. 미국 다음날 일본 언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회담 당시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와 북한 내 미군 유골 발굴 등 요구 항목 2개와 종전선언·연락사무소·대북경제지원 등 보상항목 3개를 제시했다고 또 공개했다. 문 대통령이 서울을 떠난 10일에 맞춰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FFVD를 강조하며 김 위원장을 ‘폭군’에 비유했다.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의 지속이다.
 
미국이 높은 수준의 비핵화를 거듭 공개하는 것은 청중비용(audience cost)을 최대로 키우려는 조치다.(세종연구소 우정엽 연구위원) 미국 조야와 전문가, 언론에 북한 비핵화의 미국 공시가(기준)를 밝힘으로써 협상에서 북한이 깍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세일은 끝났다. 김 위원장에게는 사실상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선 김 위원장의 전략은 결사항전 배수진이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마치 임진왜란 때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강을 뒤로 끼고 평야에서 왜군을 맞은 형세다. 당시 신립은 골이 깊고 좁은 조령에서 왜군의 진공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오판으로 결전지를 넓은 들판이 이어진 탄금대로 정했다가 패전했다. 활로 무장한 신립은 왜군의 조총 소리와 화염에 놀라 돌파하지 못하고 강물에 빠져 전사했다.(유성룡 『징비록』) 김 위원장도 비슷한 형국이다. 신립이 조령을 놓쳤듯이 김 위원장도 하노이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탐색전 격인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자 트럼프를 쉽게 봤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2차 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영변+α’를 제대로 제시했더라면 게임이 끝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꾀를 부렸다. 영변 밖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묻는 미국에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로부터 비핵화 의지에 의심을 샀다. 미국이 비핵화 기준을 대폭 강화한 원인이다. 김 위원장의 결정적 패착이다.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호의까지 저버린 셈이다.
 
김 위원장의 패착은 더 있다.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내보인 것이다. 하노이에서 그는 영변 폐쇄 조건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간 간간히 거론하던 종전선언엔 관심도 없었다.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5개는 북한의 민생경제까지 압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결과 북한 경제가 조만간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 스스로 최대 약점을 인정한 꼴이 됐다. 트럼프로서도 핵심 5개 제재를 풀어주면 비핵화 지렛대가 사라진다. 따라서 믿을 수 없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다 약점까지 파악한 트럼프는 더는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 과거 사례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 과거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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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연이은 패착수로 궁지에 몰렸다. 그는 배수진을 구축하기 위해 체제와 민생경제를 정비 중이다. 정치국 확대회의(9일)·정치국 전원회의(10일)·최고인민회의(11일)에서 ‘오판 적대세력에 타격’과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장기화할 대북제재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 각오로 응전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원했다. 언제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다. 오샤너시 미 북미방공우주사령관(NORAD)은 지난 3일 미 상원 군사위에서 “북한의 ICBM 생산과 실전 배치가 조만간 있을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충돌이 생기면 미 본토를 향해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배수진 전략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결사항전은 가능하지만, 대군을 맞은 진퇴양난의 배수진은 물자 부족으로 장기간 버틸 수 없다. 북한은 지난 2년 동안 경제성장이 마이너스였다. 연이은 경상수지 적자로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줄고 있다. 북한 정권이 보유한 외환(30억∼50억 달러)도 올 하반기쯤 동이 난다고 한다. 대북제재 지속으로 북한 외환이 거덜 나면 북한 국가기관과 권력층에 충격이 가고, 시장까지 무너질 수 있다.(서울대 김병연 경제학부 교수) 이에 더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올해 말엔 해외 파견한 북한 노동자가 모두 철수한다. 외화벌이가 쪼들린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빌미로 북·중 무역을 조이고, 해상 불법환적 차단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전방위 공세전략이다. 대북 압박을 지속하면서 군사 대비책도 갖추고 있다.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미 공군 특수 전자정찰기 RC-135S 코브라볼이 지난달 30일 일본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미 국방부는 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S)를 통해 불량국가로 규정한 북한 등에 대한 억제가 실패했을 때엔 (북한)미사일이 발사하기 전에 파괴한다는 공격작전을 공식화했다. 또한 저위력(5㏏) 핵탄두 W76-2를 올해 말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의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장착한다. 이 탄두는 사거리 1만2000㎞인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8~12개 탑재되는데 피해 범위가 1.3㎞ 정도로 적다. 명중오차는 10m다. 북한이 핵 도발을 시도하면 지도부만 일시에 궤멸시킬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의 핵 도발을 억지하는 수단이 된다. 항공모함도 정비를 마치고 연말 복귀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에게 제시한 비핵화 항목이다. ▶북한 핵무기·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관련시설 완전 해체 ▶동결조치로 모든 핵 활동과 새로운 시설 건설 중지 ▶검증조치는 핵 개발 계획 포괄적 신고와 미국과 국제사찰단의 완전한 접근 허가 등이다. 대신 미국은 보상조치로 북한 비핵화 중간과정에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를, 완전한 비핵화가 되면 경제지원도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방식은 과거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과정을 합친 형태다. 리비아는 2004년 우라늄 농축시설을 모두 미국에 보냈다. 우크라이나도 1992년부터 핵무기와 핵물질을 러시아에 몽땅 반환했다. 반대급부로 리비아는 비핵화를 완료한 뒤 경제제재 해제와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우크라이나는 경제지원과 안전을 보장받았다. 김 위원장에겐 미국의 요구가 ‘항복 문서’로 비친다. 그렇다고 그가 이 형국을 돌파할 다른 뚜렷한 방안은 없어 보인다. 배수진 전략의 핵심인 별동대로 활용할 모든 수단이 차단되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 방미 중에 폼페이오 장관이 대북제재 해제에 여지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협상끈을 놓지 않기 위한 립서비스다. 이제 김 위원장은 한·미와 국제사회를 믿고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절대왕조식 독재체제도 언젠가 내려놓을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처럼 처참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 그게 살길이다. 한국 정부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원칙에 시각을 맞출 필요가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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