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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으로만 연출된 한국공예전, 밀라노에서 주목받다

중앙일보 2019.04.11 07:00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법고창신' 전시 공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법고창신' 전시 공간

매년 4월이면 밀라노에선 ‘디자인 위크’가 열린다. 국내에선 ‘살롱 드 모빌레’로 더 잘 알려진 세계 최대 규모의 가구 박람회로, 이 기간 중 인테리어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전 분야의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올해는 9일부터 14일까지 열리며, 첫날인 9일 ‘2019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수묵의 독백’ 전시도 선을 보였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봉현)은 올해로 7회째 밀라노 디자인위크에 참가하고 있는데 주제는 ‘법고창신’으로 동일하다. 한국공예의 소중한 유산과 현재 작가들의 창작성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밀라노 또르또나 지역에 위치한 슈퍼스튜디오에서 열리는 ‘2019 한국공예의 법고창신-수묵의 독백’ 전시에는 23명의 작가의 75점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수묵의 독백’으로 정한 것은 예술감독을 맡은 정구호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다.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정구호 감독은 누구보다 색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아는 사람이지만 이번 전시에선 흑과 백의 극명한 대조를 택했다. 다음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구호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제목을 ‘수묵의 독백’으로 정한 이유는.  
“단지 먹 하나로 색의 한계를 넘나들었던 수묵화처럼, 흑과 백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한국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 전통 공예에는 다양한 색감이 살아있는데, 흑과 백의 대조를 택한 이유는.  
“다양한 듯 하면서도 없는 듯, 조선 선비들에게서 느껴지는 잔잔하고 우아한 기품을 흑과 백의 조화로 소개하고 싶었다. 또 전시 자체를 한 가지 정서로 기억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소품들을 70점 넘게 소개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흩어져 보일 수 있다. 때문에 ‘한국’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법고창신' 전시 공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19 법고창신' 전시 공간

 
-방짜 유기는 놋쇠 색이 원래인데, 이마저도 은색을 칠했다.    
“의도한 것이다. 전통공예품을 현대인의 일상에 어울리게 하려면 디자인을 많이 바꿔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색만 바꿔도 얼마든지 모던할 수 있다. 공예품은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전통공예의 기술적 유산을 더 강조하려 했다. 오히려 한국 공예가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거나 드러낼 수 없었던 현대성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8세기 후반 유행했던 전통 민화인 ‘책가도冊架圖’를 전시대로 이용했는데, 이 또한 원래의 화려한 색감 대신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선교사로 청나라에 정착해 궁중화가를 지낸 카스틸리오네가 투시법과 명암법을 통해 그린 그림이 우리 책가도의 원류라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책가도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우리만의 전통 책가도를 보여주자 생각했고, 그 자체가 너무 화려하면 전시된 작은 소품들이 가려질 수 있어 투명한 플라스틱과 백동 장석만으로 제작했다.”  
 
전시 공간 배경 색을 흑과 백으로 나누고, 투명 책가도에 역시 흑과 백으로 나뉜 제품들이 진열된 모습을 보고 밀라노 국립대학교 동양역사학 교수인 로셀라쵸씨는 “출중한 재료들이 장인의 손길을 만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오브제로 탄생했다”며 “공예와 예술, 디자인의 경계를 이미 넘어선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다양한 예술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새로운 혁신과 도전을 해온 통도사의 성파스님은 옻칠 작품을, 안상수 교수는 문자도를, 박창영·박형박 장인은 요즘 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조선 선비의 갓을, 정용진 작가는 금속 잔을, 김상인 작가는 도자기 그릇을, 이상협 작가는 방짜유기에 은을 입인 그릇을 선보였다.              
 
김천우作, 시작과 끝, 그리고 갈망, 56ⅹ650cm, 명주, 먹 나염, 2019

김천우作, 시작과 끝, 그리고 갈망, 56ⅹ650cm, 명주, 먹 나염, 2019

김윤선作, ‘혼선’, 22ⅹ18.5ⅹ42cm, 명주, 한지, 은, 2019

김윤선作, ‘혼선’, 22ⅹ18.5ⅹ42cm, 명주, 한지, 은, 2019

양현승作, ‘평양반닫이’, 51ⅹ40ⅹ40cm, 백동, 아크릴, 2019

양현승作, ‘평양반닫이’, 51ⅹ40ⅹ40cm, 백동, 아크릴, 2019

성파스님作, ‘흑(黑)’, 120ⅹ300cm, 한지, 옻칠, 2019

성파스님作, ‘흑(黑)’, 120ⅹ300cm, 한지, 옻칠, 2019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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