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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잡아낸 블랙홀 실체···'지구만한 망원경' 동원됐다

중앙일보 2019.04.11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사상 최초로 공개된 초대질량 블랙홀 M87의 모습.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관측자로 향하는 부분이 더 밝게 보인다.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 지름은 160억㎞에 달한다 [사진 EHT]

사상 최초로 공개된 초대질량 블랙홀 M87의 모습.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관측자로 향하는 부분이 더 밝게 보인다.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 지름은 160억㎞에 달한다 [사진 EHT]

초대질량 블랙홀이 사상 최초로 실제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에서 55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처녀자리 은하단에 속한 초대질량 블랙홀 ‘M87’이 그 주인공이다. 이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65억 배, 지름은 160억㎞에 달한다. 그간 이론적으로만 그 존재를 추정했던 블랙홀의 모습과 크기·질량 등이 실측되고, 큰 질량 주변의 시공간은 왜곡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유럽남방천문대(ESO)는 10일 오후 10시(한국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전 세계 13개 기관이 협력한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의 첫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EHT 연구진은 전 세계 협력에 기반한 8개의 전파망원경으로 지구 크기의 전파간섭계를 구성해 2017년 4월 총 9일간 M87을 관측, 이같은 성과를 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제 천문학계는 이번 성과에 대해 잇따라 고무적인 평가를 했다. 쉐퍼드 도엘레만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박사는 “인류 최초로 블랙홀의 모습을 보게 됐다”며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며,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진 이례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역시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궁극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며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을 가진 천체로, 하나의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물질을 중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이에 비해 크기는 매우 작아 그간 단일한 망원경으로 이를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로 지구 질량의 블랙홀이 있다면 그 지름은 탁구공의 절반보다도 작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블랙홀 관측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국제협력이 주요했다. 정태현 천문연 박사는 “우주 저 너머에 있는 블랙홀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지구 크기의 망원경을 제작해야 했다”며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설치된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등 전 세계 8곳에 EHT를 설치하고 그 영상을 서로 간섭시켜 얻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EHT는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분해능이 높은 전파간섭계로, 한국이 운영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 역시 이에 기여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EHT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먼저 관찰하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변환했다. 천문연 관계자는 “블랙홀의 강한 중력은 주변을 지나는 빛을 왜곡시키고, 빛은 블랙홀 주위를 휘감게 된다”며 “일차적으로 빛으로 인해 발생한 ‘블랙홀의 그림자’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후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 등에 위치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EHT의 원본 데이터를 역추적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M87 블랙홀의 경계는 약 400억㎞이며, 블랙홀의 그림자의 크기는 이보다 2.5배 큰 것으로 측정했다.
 
도엘레만 박사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을 이뤄냈다”며 “세계 최고 성능의 전파망원경을 서로 연결해 블랙홀 연구에 새로운 장을 함께 열었다”고 평가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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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원 허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