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썩은 권력에 맞서라, 복수극 드라마 잘나가네

중앙일보 2019.04.11 00:03 종합 23면 지면보기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주인공 나이제(남궁민·왼쪽)은 공권력과 결탁한 거대 악에 맞서 독하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 [사진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의 주인공 나이제(남궁민·왼쪽)은 공권력과 결탁한 거대 악에 맞서 독하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 [사진 KBS]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각오다. 상대는 자본과 공권력이 결탁한 거대한 악의 세력. 이에 맞서는 주인공 역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랄하게’ 싸운다.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KBS2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와 SBS ‘열혈사제’ 얘기다. 종영을 2주 앞둔 ‘열혈사제’는 시청률이 20% 가까이 올랐다. 중반쯤에 접어든 ‘닥터 프리즈너’는 15% 안팎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닥터 프리즈너’‘열혈사제’ 인기
누명 쓴 의사, 국정원 출신 신부
기업·정치·검경 카르텔 응징 나서
‘이에는 이’ 불법·폭력방식도 불사
“공권력에 대한 불신 그만큼 크다”

두 드라마는 주인공의 직업도, 장르도 다르다. 가톨릭 신부가 주인공인 ‘열혈사제’는 코믹한 수사물, 의사가 주인공인 ‘닥터 프리즈너’는 반전이 있는 서스펜스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맞서는 악의 실체는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자본에 공권력이 빌붙은 ‘악의 카르텔’이다. 경찰도, 검찰도 아닌 주인공이 이에 맞서게 된 데는 각자 뚜렷한 이유가 있다.
 
‘닥터 프리즈너’의 주인공 나이제(남궁민)는 태강병원 응급의학센터의 실력있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였다. 좋은 의사가 되려던 그의 꿈은 태강그룹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다. 이재환은 장애인 부부와 배 속의 아이까지 죽게 하고, 그 책임을 나이제에게 뒤집어씌웠다.
 
나이제는 자신이 죄수로 3년간 머물렀던 교도소의 의료과장이 되어 마약복용 혐의로 수감된 이재환에 복수를 한다. 나아가 교도소의 왕으로 군림해온 전 의료과장 선민식(김병철), 교도소와 결탁해 온갖 비리를 저질러온 태강병원 경영진과 의사들에게까지 응징의 칼날을 들이민다.
 
흥미로운 점은 나이제가 간교한 재벌 사모님(김정난)과 사이코패스 재벌 아들(이주승)의 없는 병도 만들어줘서 형 집행정지를 돕고, 의료과장 후보자를 납치하는 등 복수를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는 것. 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병을 만들어주는 의사로의 변신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열혈사제’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공권력과 결탁한 거대 악에 맞서 독하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 [사진 SBS]

드라마 ‘열혈사제’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공권력과 결탁한 거대 악에 맞서 독하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 [사진 SBS]

악한 상대를 악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는 건 ‘열혈사제’도 마찬가지. 국정원 특수요원이던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작전 도중 무고한 어린이들을 살상하는 사건을 겪은 뒤 방황하다가 영혼의 구원자 이영준 신부(정동환)를 만나게 되고, 속죄를 위해 신부가 된다. 하지만 극 중 가상도시 구담시의 모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찰서장·부장검사·구청장·국회의원·조폭 보스 등이 결탁한 ‘구담시 카르텔’이 눈엣가시 같은 이 신부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자, 분노에 휩싸인 해일은 국정원 시절의 능력을 살려 카르텔 응징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불법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경찰·검찰도 악과 한 통속이기에 그의 선택은 정당성을 얻는다. 해일은 돈에 매수돼 이 신부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증인들을 찾기 위해 국정원 시절 알았던 해커를 다그치는가 하면, 구담시 카르텔의 약한 고리인 불량 급식업체를 급습하고, 조폭 보스 별장에도 무단침입해 정보를 얻어낸다.
 
결코 선하지 않은 방법으로 악을 응징하는 이들의 사적 복수에 시청자가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공권력이 유착돼 있거나,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혐의가 짙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높은 상황에서 부정한 공권력과 결탁한 절대 악을 응징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대중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각 드라마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악의 세력이 공권력과 유착돼있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임을 깨닫는다”며 “복수의 과정 또한 정당해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에서 벗어난 주인공들의 활약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두 드라마에는 현실을 연상시키는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닥터 프리즈너’에는 온갖 갑질과 마약까지 하고도 반성은커녕 교묘히 법망을 뚫고 나가려는 재벌 3세, 여대생 살인 청부 혐의로 복역 중 속임수로 형 집행정지를 받은 뒤 호의호식하는 재벌 사모님 등이 시청자의 공분을 자아냈다. ‘열혈사제’는 클럽 버닝썬을 연상케 하는 클럽 ‘라이징문’을 등장시켰다. 이곳에 연예인과 재벌이 드나들며 마약 등 불법 행위를 해도 경찰이 뒤를 봐주는 것으로 그려진다.
 
물론 주인공의 복수가 순탄하진 않다.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의 반격에 움찔했던 선민식은 간교한 꾀로 나이제의 목을 다시 움켜쥔다. ‘열혈사제’의 김해일은 악의 실체가 예상보다 훨씬 깊고 굵게 뿌리내려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낙담하지 않고 독하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악당 같은 주인공 나이제의 선택에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건, 상대가 악랄하게 싸우지 않으면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악의 카르텔’이기 때문”이라며 “이는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들의 독기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공권력조차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무력감이 팽배한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