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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외통수에 몰린 김정은…북한 경제 뿌리째 흔들린다

중앙일보 2019.04.11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대북 제재에 얼마나 버티나
퍼스펙티브 4/11

퍼스펙티브 4/11

해마다 북서 계절풍이 강하게 부는 12월~3월이면 북한 난파선들이 일본 해안에 집중적으로 밀려온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표류 어선은 200건을 넘어 사상 최고였다. 1년 전(130건)보다 70% 증가했다. 이런 비극은 수산물 수출이 황금알을 낳았기 때문이다. 북한 어획량은 2011년 69만톤에서 2016년 100만톤으로 늘었고 그중 90%가 1억5000만 달러에 중국으로 수출됐다. 북한 어민들은 낡은 목조 어선을 타고 대화퇴어장 등 먼바다로 ‘어로 전투’에 내몰렸다.  
 

유례없는 대북제재에 중국도 동참
북, “물과 공기로 살 수 있다”지만
머지않아 외화 바닥나 위기 닥쳐
트럼프 “서둘지 말고 1년 두고 보자”

희한하게도 1월 15일 이후 북한 유령 선박에 대한 일본의 언론 보도가 딱 끊겼다. 거센 북서풍에도 80일 넘게 난파선이 밀려오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을 두 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우선 대북제재로 수산물 판로가 봉쇄된 것이다. 수출 거점이던 훈춘과 단둥에선 북한 해산물이 사라지고 밀무역으로 들어와도 헐값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선별 작업이 안 된 데다 선도 등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석유 수입이 줄면서 어선용 기름 공급도 어려워졌다. 한마디로 대북 제재가 죽음의 조업을 차단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집권 이후 빛나는 성공을 이뤘다. 핵·미사일 무력을 완성했고 경제는 ‘골디락스’를 누려왔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는 “북한 경제가 곧 붕괴될 것”이라는 환상 속에 살았다. 하지만 중국 변수를 간과했다. 오히려 무연탄 대중 수출이 급증하면서 북한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톤당 70달러 수준이던 국제 시세가 2011년 201달러~2014년 110달러로 뛰자 눈부신 플러스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무연탄값이 90.9달러로 떨어진 2015년에만 성장률이 -1.1% 뒷걸음질 쳤을 뿐이다.
 
지난 1월 9일 일본 경찰이 시마네현에 표류해온 북한 목조 어선을 조사하고 있다. 1월 중순 이후 북한 난파선도 뚝 끊겼다. [연합뉴스]

지난 1월 9일 일본 경찰이 시마네현에 표류해온 북한 목조 어선을 조사하고 있다. 1월 중순 이후 북한 난파선도 뚝 끊겼다. [연합뉴스]

북한 경제 구조는 매년 무연탄 수출 10억~13억 달러, 의류 임가공 수출 7억 달러, 10만명의 해외 파견 노동자 임금 3억 달러, 수산물 수출 1억5000만 달러 등의 큰 덩어리로 짜여 있다. 이렇게 번 외화로 석유와 식량, 생필품을 수입해 왔다. 북한 교역에는 특이한 대목이 눈에 띈다. 수출할 때는 국제 시세보다 싸게 팔고 수입할 때는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쓰는 것이다. 그 차이가 바로 킥백(kickback·뇌물)이다. 매출액의 7~10%인 이런 차액이 북한의 당·군부에 흘러들어와 윤활유 구실을 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2016년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된다. 2016년 이전에는 예방 주사를 놓는 차원이었다. 핵·미사일용 부품과 사치재 수입 금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돈줄을 죄고 경제를 봉쇄하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2017년 12월까지 나온 5개의 제재 결의안(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이 대표적이다. 차례차례 석탄 수출금지·해외 노동자 송환·수산물 및 의류 임가공 수출 금지·원유 동결 및 석유 수입 50만 배럴 제한 등으로 북한의 외화 획득 통로를 90% 이상 틀어막아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과 통상 분쟁에서 수세에 몰린 중국이 수동적이나마 대북 제재에 동참한 것도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로 인해 북한의 2018년 대중 수출은 2억1314만 달러로 전년 대비 88%나 곤두박질해 거의 붕괴 수준이다. 경제성장률도 2017년 -3.5%, 2018년 -5%(추정)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그나마 2018년에는 남북·북미·북중 정상회담들로 북한에는 "제재가 곧 풀릴 것”이란 기대심리가 있었다. 하지만 북·미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 경제는 뿌리째 흔들리는 조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평양의 아파트 가격(입주권)은 반 토막 났다. 철광석 단지인 무산 광산에는 물이 차오르고, 김책 제철소는 중국산 코크스 수입이 막히면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올 들어 주요 국영기업들도 부품과 자재 부족으로 속속 가동 중지됐다는 소식이다. 여기에다 의류 임가공 수출이 막히면서 경공업 분야의 일자리 붕괴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북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는 북한 장마당의 환율·쌀값·기름값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1달러당 8000원 선, 쌀값은 kg당 5000~6000원, 휘발유는 1kg에 1만6000~1만8000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국제 제재로 상품 공급이 줄어든 만큼 소득 감소에 따라 장마당 수요도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은 북한이 보유 외환을 헐어 생필품을 수입해 시장에 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대중 무역적자는 2017년부터 2년 연속 20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 외환보유액이 고갈되고 북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정은

김정은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방울의 기름, 한 와트의 전기, 시멘트 한 그램, 나무 한 토막도 소중히 하자”며 버티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정은이 시사한 ‘새로운 길’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경우 대북 제재는 더 단단히 조여지고 중국의 물밑 협력조차 얻기 힘들어진다. 중재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도 난감해진다.
 
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은 굉장히 고통받고 있다”며 “1년쯤 뒤에 알게 될 테니 두고 보자”는 느긋한 입장이다. ‘거래의 달인’답게 상대방의 목을 조르면서도 “나와 김정은의 관계는 아주 좋다”는 달콤한 멘트로 퇴로마저 차단시켜 버렸다. 김정은이 외통수에 몰린 형국이다.
 
시간은 김정은 편이 아니다. ‘제재 효과=제재의 강도×시간’이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위원회 보고서처럼 북한도 불법 환적 등으로 기를 쓰고 봉쇄망을 뚫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생명줄인 무연탄은 밀수출하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고 무겁다. 선박이나 철도로 옮길 경우 정찰 위성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여기에다 화학 원료 수입 부족으로 비료 생산이 급감해 식량난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북한의 대남 일꾼들은 “5~6월 적기에 뿌리려면 4월 말까지 들어와야 한다”며 비료 지원에 매달린다고 한다.
 
이번 대북 제재의 충격파는 대중 교역에 기생해온 북한의 특권층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인 김정은의 통치자금도 급감할 게 분명하다. 반면 과거 ‘고난의 행군’ 때 집중적으로 희생된 북한 민초들의 경우 400개가 넘는 장마당 덕분에 극단적인 위기는 피하고 있다. 그러나 전방위 경제 봉쇄와 마이너스 성장 앞에 버틸 장사 없다. 하노이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의 급소를 간파했다. 중국 손발을 묶어놓고 최대한의 경제 압박으로 북한 목조르기에 돌입했다. 환율·쌀값을 제외한 북한 장마당의 밀가루·설탕·식용유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국내 민족해방(NL) 진영은 “평양에 가보니 전력 사정도 좋아지고 난방도 잘 되더라”는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북 제재가 효과 없다는 선전이었지만, 속사정은 정반대였다. 북한의 무연탄 수출이 막히자 내수용으로 돌려 잠시 전력과 난방이 좋아졌을 뿐이다. 오히려 평양의 밤이 밝아지고 북한 유령 어선이 사라진 것에서 북한 경제의 단말마적 고통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NL 진영 인사들은 입장을 바꿔 “경제 제재야말로 선량한 주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나쁜 대량 살상무기”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는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가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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