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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일까? 피 철철 흐르는 폭력영화가 싫어진다

중앙일보 2019.04.10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3)
마음이 허둥대는 날엔 영화가 좋다.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 화사하게 바뀌기도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영화관 티켓부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마음이 허둥대는 날엔 영화가 좋다.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 화사하게 바뀌기도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영화관 티켓부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봄꽃이 활짝 피었다. 꽃이 너무 화사하니 눈이 수줍고 아리송하다. 마음이 허둥대는 날엔 영화가 좋다. 한편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내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고 화사하게 바뀌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리뷰에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소개한 두 편의 일반 영화를 보았다. 어찌나 피를 많이 흘리고 잔혹한지 내 나이에는 안 맞다. 무엇을 보고 재미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고 나오면서 후회한다. 요즘 국산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 험하고 무섭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나쁜 사람들같이 보이게 만들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좋은 영화인가, 세월이 흐름이 그런 건가, 의문이 든다.
 
또 한 편의 영화는 외화인데 일곱 개의 영화관 중 다섯 개의 스크린을 다 차지하고 상영시간도 한 시간마다 돌아간다. 호기심에 들어가서 심하게 졸다가 나온다. 뭔 말인지 감동도 안 오고 잘 모르겠다. 내가 시대에 안 맞는 관람객인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까?.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장에 가는 꼴 같은 내가 한심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 속에서 무얼 찾고자 하는 걸까 궁금하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힘들고 지친 인생살이, 누군가에게 한바탕 싸움이라도 걸고 싶은 꾹꾹 눌린 마음을 영화 속의 폭력과 무서운 장면으로 대리만족 스트레스를 푸는 것일까? 피가 철철 흐르도록 두들겨 맞고 죽이는 전쟁 같은 영화는 요금이 비싸도 관객이 많고, 주옥같은 여운을 주는 문화 영화는 요금이 싸도 손님이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이야기는 시시한가 보다.
 
오늘도 친구가 공짜표가 생겼다며 나오란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문화영화만 상영하는 중앙시네마로 간다. 안동에 이런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안동의 중심이라 할 만큼 번화가인 극장 근처 골목엔 봄꽃이 피어 화사하다. 오랜만에 인산인해다. 
 
안동의 특색 있는 빵집 맘모스 제과점 앞엔 치즈 빵을 사기 위해 줄이 길게 서 있다. 도심의 중앙에 위치한 데다가 가까이 있는 빵집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은 손님이 좀 있겠지 기대하며 올라가니 영화 관객은 아무도 없다. 오늘도 친구와 내가 유일한 손님이다.
 
영화 '가버나움'과 '아이스' 포스터.

영화 '가버나움'과 '아이스' 포스터.

 
이곳에서 본 영화 횟수가 벌써 열 손가락을 넘었다. '가버나움', '아이스', '천국의 아이들', '인생 후르츠' 등등 주옥같은 명작을 보았다. 문화영화에는 손님도 없지만 극 중에 격한 폭력도 욕설도 없다. 그러나 잔잔한 느낌이 있고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다.
 
왜 태어났는지의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껴가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지는 우리의 삶. 한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혹독한 가난과 무관심으로 힘든 인생을 살아간다. 
 
부모를 고발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모습에서 보는 내내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슴이 먹먹했던 ‘가버나움’과, 아이의 마음을 그려내어 동심의 세계를 보여준 ’천국의 아이들‘은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눈높이 하여 들여다 보는 해안을 가지게 해주었다. ‘인생 후르츠’는 우리의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청량함을 준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과 '인생 후르츠' 포스터.

영화 '천국의 아이들'과 '인생 후르츠' 포스터.

 
제목만 보고는 시시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 ‘아이스’는. 사랑할 수 있는 젊음이 있는 나이에, 사랑이 힘든 중년의 나이에도 우정이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던 영화다.
 
이 봄이 가고, 봄이 여행을 떠나 다시 돌아오는 새봄이 오고, 그렇게 인생도 시네마 영화가 되어 쉼 없이 돌아가겠지. 내 마음의 쉼터가 되어줄 한 편의 영화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줄 것이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나도 그 속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어 나이 들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더 와이프’를 보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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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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