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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하노이, 입에 담지도 말라" 北 노동당 지침 내려왔다

중앙일보 2019.04.10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업을 앞둔 평양의 대성백화점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이달 들어 대외활동을 본격화한 김 위원장은 연일 경제민생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업을 앞둔 평양의 대성백화점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이달 들어 대외활동을 본격화한 김 위원장은 연일 경제민생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하노이 회담을 일체 언급하지 말라”며 내부적으로 ‘하노이 함구령’을 내렸다고 관련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이 9일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북·중 접경 지역에서 이뤄진 간부 학습제강(강연)에서 “하노이 회담(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물어보지도 말고, (누가 물어봐도) 답하지 말라”며 일체 언급을 삼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학습제강은 북한 노동당 명의로 이뤄진다. 학습제강의 지침은 노동당의 공식 지시다. 학습제강에선 “모든 결정은 당에서 알아서 한다”는 지침도 함께 내려왔다. 당시 학습제강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역일꾼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른바 무역일꾼들은 접경 지역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만큼 외부 소식을 상대적으로 빨리 접하고, 또 평양을 오갈 수 있어 회담 전말을 북한 내부에 퍼뜨릴 수도 있는 집단이다.  
 

북ㆍ중 접경지역 무역일꾼 대상 '학습제강'
김정은 이미지 훼손 우려해 차단 나선 듯

김정은 위원장이 이달 초 삼지연군 시찰 때 감자공장을 방문했다. [노동신문]

김정은 위원장이 이달 초 삼지연군 시찰 때 감자공장을 방문했다. [노동신문]

이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에게 전파되는 걸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고도 해석했다. 체면을 구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걸 차단하기 위한 노동당의 입 단속이 북한 내부에서 전방위로 진행됐음을 의미한다는 취지다. 비슷한 시기 평양 등 각지에선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미국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다’는 내용의 비공개 사상 교육이 열렸다고 한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북한에선 최고지도자를 신적인 존재로 묘사하며 ‘수령의 무오류성’을 가르친다”며 “하노이 이후 당이 내부 단속에 안간힘을 쏟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6일 이례적으로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도 회담 결렬의 부담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내부에선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비롯해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김 위원장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회담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김영철의 신변을 놓고선 문책설도 있지만 건재하다는 소식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다른 소식통은 “김영철을 대체할 인물이 별로 없고, 문책하는 순간 하노이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돼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댄 스캐비노 트위터 캡처]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댄 스캐비노 트위터 캡처]

북한이 지난달부터 내부적으로 하노이 회담을 거론하는 걸 꺼리는 상황을 놓고 ‘버티기 전략’으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달 들어 연일 경제 행보를 지속하며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 북한 언론에서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 6·12 싱가포르 합의와 같은 남북, 미북 합의 이행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며 “김정은이 올해 상반기 동안은 미북, 남북 사이의 현 교착 상태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단계적 합의, 단계적 이행방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가사업인 삼지연군 현대화사업, 원산갈마해안지구 건설의 완공 시기를 늦춘 것도 “미국, 남한에 제재 장기화에 시간적으로 쫒기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가 장기화되는 경우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겠는가가 관심사인데 올해 1월 김정은-시진핑(정상) 회담에서 중국으로부터 올해분 무상 경제지원은 다 받아냈으니 올해 하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타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완공 시기를 올해 10월에서 내년 4월로 연장시켰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완공 시기를 올해 10월에서 내년 4월로 연장시켰다.[연합뉴스]

북한은 북·중 접경 지역 무역일꾼들에게 ‘하노이 함구령’을 내리면서 외화벌이 목표량을 채우라고 채근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들은 누구보다 대북제재 완화를 절박하게 기다려왔다”며“제재 완화는커녕 함구령에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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