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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자력연 60년…행사 끝나기 25분 전에 자리 뜬 문미옥

중앙일보 2019.04.10 00:15 종합 30면 지면보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오지 않았다. 대신 와서 포상을 한 문미옥 차관은 컴포트슈즈 차림이었다. 그는 행사가 끝나기 25분 전에 자리를 떴다.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였다. 어제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구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생긴 일이다. 이런 걸 ‘푸대접’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포상도 대폭 축소 … 참석자들 “씁쓸한 홀대”
맹목적 탈원전 벗어나 합리적 정책 재검토해야

10년 전 원자력연 50주년 때는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다.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렸던 원자력 반세기 기념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참석하려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나왔다. 훈장·포장 각 2명에 대통령 표창 3명, 국무총리 표창 4명, 장관 표창 29명 등 40명이 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올해 포상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격 또한 떨어졌다.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은 없고 장관 표창만 10건이다. 이를 의식한 듯 문 차관은 축사에서 “원자력의 날(12월 27일)에 별도 포상하겠다”고 밝혔다. 한 참석자는 “축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은 것 같다”고 했다. 문 차관은 축사 후 표창을 하고는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원자력계 인사들은 “씁쓸하다”는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당장 원자력계에서는 인력난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홀대받는 데 누가 오겠는가”하는 우려다. 그러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 들어 원자핵공학을 찾는 젊은이들 발길이 확 줄었다. KAIST는 원자력 전공 지망자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지난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신입생 중에 20%가 자퇴했다. 이처럼 인력에 문제가 생기면 원전 수출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최소 40년간 안전을 책임질 인력이 필요한 게 원전이다. 그게 불투명한 나라로부터 누가 원전을 사겠는가. 이뿐 아니라 방사선 의학 같은 응용 분야와 핵융합 연구마저 타격을 받을 판이다. “우수수 원전을 짓고 있는 중국과 안전을 논의할 인력조차 구하기 힘들 수 있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탈원전이 드리운 그늘이다. 원자력이 정말 인류를 위협한다면 받아들여야 할 십자가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의 흐름은 다르다. 빌 게이츠는 “온난화를 막을,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라며 훨씬 안전하고 효율 높은 원전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엊그제 뉴욕타임스는 ‘원자력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Nuclear power can save the world)’는 석학들의 기고를 실었다. ‘원전은 탈탄소 경제를 실현할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논지였다. 후쿠시마 참사 뒤 ‘원전 0’를 선언했던 일본마저 ‘2030년 원전 비중을 20~22%로 맞추겠다’고 180도 방향을 틀었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여론 조사를 통해서 ‘원전 유지 또는 확대’라는 국민 여론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맹목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탈원전 결정에 과학적·논리적 배경은 없었다. 단지 이념에 뿌리박은 선택이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원전 재난 영화 보고 탈원전을 결심했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원전 설비 업체가 많은 경남 창원과 원전 건설을 중단한 경북 경주·울진은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원자력연구원 60주년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에너지 정책이 무언지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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