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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영장 흘린 것도 모자라 피의자에 보내달라 한 경찰

중앙일보 2019.04.09 17:42
부산 남부경찰서 전경.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 남부경찰서 전경. [사진 부산경찰청]

경찰이 불법 대부업체 일당을 체포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체포영장을 현장에 두고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분실한 지 11시간 뒤 이를 알아차린 경찰은 대부업체 일당에게 영장을 고속버스 특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경찰 체포영장 현장에 두고 온 사실 11시간 뒤 알아채
피의자에게 ‘영장 서류 고속버스로 보내달라’ 요청
영장에 적힌 ‘익명의 제보자’ 문구로 제보자 신원 노출

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 부산 남부경찰서 소속 수사관 20명은 경기도의 한 아파트를 압수수색했다. 이 아파트는 불법 대부업체 일당 13명이 칩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일당 7명을 검거하고, 3월 28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에 부산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11시 수사관 중 한 명은 압수수색·체포 영장을 현장에 두고 왔던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압수수색·체포 영장 원본은 수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서류다. 피의자 신병 구속이나 주거지 수색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와 압수대상물에 대한 정보 등이 기재돼있다. 집행 후에도 영장에 집행일시와 집행 범위를 모두 기록하게 돼 있어, 이후 법원이 집행이 적법했는지 권한이 남용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판단하는 서류가 되기도 한다.
 
 놀란 수사관은 체포되지 않은 대부업체 일당에게 전화를 걸어 ‘고속버스 특송으로 영장 서류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영장 내용을 사진으로 모두 찍어 조직원들과 공유한 뒤 서류를 보내줬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수사관이 영장을 현장에 두고 온 것은 명백한 실수다”며 “적법한 열람 과정이 생략된 채 내용이 공개된 것은 문제”라고 인정했다. 
 
대부업체 일당에게 서류를 보내달라고 한 것은 안일한 대처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담당 수사관이 직접 현장에 가서 회수하거나 경기 지역 경찰서에 요청해 서류를 회수했어야 했다”며 “대부업체 일당에게 서류를 보내달라고 한 것은 너무 안일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영장 분실로 제보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2차 피해도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업체 일당들이 평소 제보자를 의심하던 중 분실한 영장에서 ‘익명의 제보자’가 있다는 문구를 보고 해당 제보자를 추궁하며 위험에 노출됐다. 결국 제보자는 제보 사실을 일당에게 자백했다. 제보자는 현재 신변 보호 요청을 수사기관에 한 상태다. 경찰은 “추가 피해가 없도록 신변 보호조치를 하고 있다”며 “수사 완료 후 영장을 분실한 직원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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