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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1%에 수수료 0.47%···금융회사 '호구'된 퇴직연금

중앙일보 2019.04.09 11:05
취재일기 
“어차피 은행에 맡겨봤자 정기예금에 퇴직금을 쌓아두는 건 똑같아요. 굳이 은행에 수수료 낼 필요 없지 않나요? 회사가 그 돈을 잘 보관만 하면 되니까요.”

지난해 수익률 1.01% 역대 최저
'잡은 물고기'에 밥 안 주는 금융사
수익률 경쟁 촉진하는 제도 필요해

 
한 중소기업 퇴직연금 담당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교육에 참여한 뒤 이런 질문을 던졌다. 퇴직연금 관련 업무는 늘었는데 근로자에게 돌아갈 퇴직금은 불어날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총 담당자는 “퇴직연금으로 쌓아두면 기업이 혹시 망하더라도 근로자 퇴직금은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래도 질문자는 썩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근로자 퇴직금을 무엇을 위해 금융회사에 맡겨야 하는가. 2005년 도입돼 15년째 운영 중인 퇴직연금 제도는 아직도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아도 너무 낮아서다. 2016년 1%대로 떨어진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지난해엔 1.01%로 추락했다. 역대 최저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주식시장이 침체기였던 탓도 있다. 주로 주식형 펀드로 운용되는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도 1.56%에 그쳤다.
 
원리금 보장형은 보통 만기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운용된다. 10년 이상 장기로 굴려야 할 퇴직연금을 금리가 낮은 1년짜리 정기예금에 쌓아두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더 이상한 건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이 1년 정기예금 평균 금리(연 1.88%)보다 한참 낮다는 점이다. 금융회사가 떼 가는 수수료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0.47%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수익률과 상관없이 말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퇴직연금만큼 안정적인 장사도 없다. 일단 한번 기업의 퇴직연금 사업자로 지정만 되면 직원 연봉의 12분의 1이 매년 적립금으로 꼬박꼬박 쌓인다. 그에 따라 수수료는 점점 불어난다.
 
제도적으로 기업이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보니 그렇게 쉽게 바꾸지 못한다. ‘잡아 놓은 물고기’나 마찬가지다.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가입 뒤엔 나 몰라라 하는 까닭이다.
 
‘근로자 노후소득 보장’이란 퇴직연금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금융회사를 뛰게 해야 한다. 가입 유치만 하면 끝이 아니라 수익률에 따라 고객을 뺏고 뺏기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 열려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호주식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시작 못 했다. 내년 이맘때 공개될 2019년 퇴직연금 수익률이 벌써 걱정스럽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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