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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말해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는 단 한 사람

중앙일보 2019.04.09 11:00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12) 
내가 “괜찮다”라고 하면 신랑이나 아이는 정말 괜찮은 줄 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리광을 부릴 수가 없다. 더 어리고 보호해 줄 존재 앞에서 “나도 힘들다, 나도 아프다, 이거 못한다” 떼쓰기가 어쩐지 민망하기도 해서 한때는 우리 집 막내로,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어리광 대장이었다가 점점 “혼자 하면 되지 뭘 못해”로 변해가는 중이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그러다 보니 간혹 괜찮지 않은 상황이 와도 나도 모르게 “응. 괜찮아”하고 있다. 그런 거짓말로 심장 덜덜 떨렸던 유방암 조직검사도 혼자 갔다. 병원에서 대기 하는 동안 걸려온 “내가 지금이라도 갈게. 어디야?”하고 물어주는 친한 언니 전화에 애써 “아니야”라고 하고 끊고 함께 와주지 않은 신랑에게 서운함과 두려움에 조용히 울기도 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일을 그만두고 좀 쉬고 싶다는 의논 아닌 남편의 통보에도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뒤로 밤마다 머리가 아플 만큼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괜찮다는 말에 신랑은 정말 괜찮은 줄 아는지 형식적인 위로나 미안함도 내보이지 않았다. 아이도 심한 장난을 치다 정말 으악 소리가 나게 아프게 해도 아이가 놀랄까 “괜찮아”라고 하면 정말 괜찮은 줄 알고는 금세 또 장난을 친다. 그러면 나는 또 아프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남편과 다툰 날은 혼잣소리라도 크게 지르며 울면 좀 풀릴 것 같은데 또르르 흐르는 눈물만 봐도 나보다 더 크게 우는 아이 때문에 맘대로 울지도 못한다. 또 “엄마 괜찮아”하고 눈물을 꿀꺽 삼키고 참는다. 그런 시간이 매일 항상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쌓이고 쌓여 이제 웬만한 일엔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 전의 나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인내심이 생기는 중이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신랑이 일을 안 하면 이제 어떡하냐고 나보다 더 걱정인 엄마에게도 이제 힘들어 죽겠다는 투정 대신 "괜찮아"라고 했다. “엄마 뭐 어떻게 되겠지. 그냥 나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도 단련이 된 건지 사실 정말 괜찮기도 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전화를 끊고 나서 몇분 뒤에 문자가 왔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가 너를 아는데~ 없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써"라며 용돈을 보내는 엄마. 가끔 친정에 아이랑 놀러 가면 괜찮다고 해도 오자마자 아이를 낚아채듯 데려가며 "괜찮긴 들어가서 자~"라는 엄마. 나도 살림 좀 해보니 밥 한 끼 차리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알기에 "아무거나 먹을래. 다 괜찮아" 해도 유일하게 "괜찮긴~" 해주는 엄마.
 
나보다 더 긴긴 시간을 "엄마는 괜찮아" 하며 살아왔을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든든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난 또 대부분 "괜찮다"하는 시간을 살지만. 그래도 내 마음 알아주는 엄마가 있어 오늘도 정말 "괜찮다"
 
장윤정 주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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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주부 필진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 마냥 아이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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