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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맑아지는 음식 있다고? 그럼 혈액투석은 왜 하나

중앙일보 2019.04.09 10: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32)
혈액은 면역 T 세포(주황색).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붉은색), 혈액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초록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기능성 세포들로 인해 맑지 않다.

혈액은 면역 T 세포(주황색).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붉은색), 혈액응고를 담당하는 혈소판(초록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기능성 세포들로 인해 맑지 않다.

 
피가 맑으면 좋고 탁하면 나쁘다는 것이 일반대중에게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피를 맑게 해준다는 음식에 귀가 솔깃해지고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대개 한의사나 대체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그러나 거짓이다. 칼에 베였을 때나 코피가 났을 때를 생각해보자. 피를 만지면서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테다. 피가 진짜 맑다면 끈적하지 않고 그냥 물 같은 가벼운 질감이지 않을까?
 
피는 원래 맑지 않다. 혈액 속에는 수많은 기능성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혈액은 액체 성분의 혈장이 전체 혈액의 50~60%를 차지하고, 나머지 40~50%는 물에 녹지 않는 과립(알갱이) 성분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혈장의 90% 이상은 물이며 나머지는 항체 등 여러 기능성 단백질, 미네랄, 아미노산, 대사에서 생긴 노폐물, 각 세포에 날라줘야 할 온갖 물질들이 녹아 있다. 노폐물은 간으로 이동하여 처리 후 콩팥에서 배설된다.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 방치하거나 원심분리하면 혈장 부분과 적혈구, 백혈구 등의 과립 성분으로 나뉘면서 위의 혈장 부분은 맑고 노르스름한 색을 띤다. 먹은 음식과 몸 상태에 따라서 색깔이 조금 달라질 수 있고, 음식을 먹은 전후에 맑고 탁한 정도가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음식이 소화될 때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전분은 포도당으로 되어 혈장에 녹아 운반된다.
 
그런데 지방종류는 양상이 다르다. 지방이나 지방산, 콜레스테롤은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혈장에 녹여 운반할 수가 없어 특수 운반체를 이용한다. 이 운반체가 바로 ‘리포단백질(lipoprotein)’이라는 것으로 엉터리 전문가들이 HDL, LDL 운운하며 좋고 나쁜 콜레스테롤로 구분하는 것들이다. 이런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동시에 운반하는 리포단백질에는 이 두 가지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어 각각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원심분리기로 분리한 피의 모습. 윗부분 노란색이 혈장이다. 그 아래가 과립 부분으로 중간에 백혈구와 혈소판이 있고, 아래에 적혈구가 있다. [중앙포토]

원심분리기로 분리한 피의 모습. 윗부분 노란색이 혈장이다. 그 아래가 과립 부분으로 중간에 백혈구와 혈소판이 있고, 아래에 적혈구가 있다. [중앙포토]

 
식후에 바로 피를 뽑아 원심분리로 혈장 부분을 모아보면 맑지 않고 매우 탁하게 보인다. 리포단백질 중에서도 소화된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종류(chylomicron)의 밀도가 높아서다. 당연히 먹은 음식 속 지방의 함량에 따라 탁도는 다소 다를 수 있다. 민간요법으로 체했을 때 손끝을 바늘로 따서 피를 뽑아내는 경우가 있다. 이때 붉은 피가 나오면 안 체한 것, 새까만 피가 나오면 단단히 체한 것으로 취급하며 호들갑을 떤다. 별로 근거가 없는 판별법이다.
 
왜 검은 피도 있고 붉은 피도 있는 걸까? 혈액이 붉게 보이는 것은 색소 때문이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은 원래 붉은색을 띤다. 그런데 산소와 결합하면 색깔이 더 선홍색으로 진해진다. 반대로 산소의 결합량이 줄어들면 검붉게 보인다. 따라서 산소와 결합한 동맥피는 붉게, 산소를 하역한 정맥피는 검게 보이는 이유다.
 
질식 등으로 산소의 공급이 부족하여 입술이 새파래지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이다. 각 세포에 운반된 산소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반응계(전자전달계)에서 소모되고 물로 변한다. 적혈구는 원반 모양의 주머니 형태를 취하며 그 속에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 분자가 꽉 차 있다. 단백질의 중앙에는 철(Fe)이 결합한 헴(heme) 구조가 있어 산소와의 결합에 관여하며 동시에 적색을 띠게 한다.
 
체했을 때 손을 따서 붉은 피가 나오면 체기가 없는 것, 검붉은 피가 나오면 단단히 체했다고 판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혈액의 색상은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얼마나 결합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체했을 때 손을 따서 붉은 피가 나오면 체기가 없는 것, 검붉은 피가 나오면 단단히 체했다고 판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혈액의 색상은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얼마나 결합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그럼 빈혈은 무엇일까? 단어 뜻 그대로 피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보통 5ℓ 정도인 혈액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혈구가 감소하거나 그 속의 혈색소 즉 헤모글로빈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혈색소 농도가 남성 13g/dL 미만, 여성 12g/dL 미만이면 빈혈로 친다. 혈색소가 부족하면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충분한 에너지생산이 되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
 
빈혈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대개는 병적인 경우나 영양결핍에서 온다. 빈혈에 철분이 좋다고 권장하지만, 보통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같이 풍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철분의 부족현상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병변에서 온다. 만약 영양결핍으로 빈혈이 생겼다면 당연히 철분이 효과가 있을 테지만. 임산부가 철분제를 먹는 것은 태아의 피에 필요한 여분의 철을 공급해 주기 위함이다.
 
세상에 피를 맑게 하는 음식은 없다. 피는 항상 탁한 상태니까. 피가 맑아지면 정상이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우기기도 한다. 우리가 피를 맑게 한다는 것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으로 노폐물이나 독소를 없애주는 성분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런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도 없다. 그런 음식과 성분이 있으면 콩팥 망가진 환자에게 혈액 투석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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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필진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 시중에는 건강식품이 넘쳐나고 모든 식품이 약으로 변했다. 허위와 과대광고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함량 부족의 전문가가 TV에 붙박이로 출연하면서 온갖 왜곡정보를 양산하고 소비자를 기만한다. 음식으로 치료되지 않는 질병이 없고 그들의 말대로라면 질병에서 해방될 것 같은 분위기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들을 쇼닥터로 지칭하고 규제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이제 그 도를 넘겼다. 노후에 가장 관심사인 건강관리를 위해 올바른 지식을 알리고 시중의 잘못된 식품에 대한 왜곡된 상식을 바로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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