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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택시 접고 소방차 몰았다···주민소방관 3인 '눈길'

중앙일보 2019.04.09 05:00
지난 4일 오후 11시55분 트럭운전사이자 의용소방대원인 김정오(51)씨는 강릉소방서로부터 출동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곧장 자신의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인 강릉시 옥계면 소방안전센터로 달려갔다. 소방안전센터 옆에 있는 의용소방대에서 소방차를 꺼내기 위해서다. 김씨가 운전한 소방차는 이튿날인 5일 오후 4시까지 옥계면 일대 화재 진압에 참여했다.
 

덤프기사, 연차 내고 소방차 운전
24년차 택시기사는 길잡이 ‘톡톡’
공사반장은 안전확보·대피소 안내

김씨가 탄 소방차는 1t 트럭에 700ℓ 물탱크를 실은 차량이다. 현재 강릉시에 배치된 의용소방차 8대 중 옥계면에서는 1대가 운용 중이다. 차량 내부에는 의용소방대원이 사용하는 개인용 방진 펌프와 잔불 정리용 갈고리가 들어있다.
 
김씨는 평소 옥계면에서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25t 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다. 24년째 옥계시장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동네사진사이기도 하다. 화재 당일 소방차를 몬 김씨는 회사에 연차를 내고 불을 끄러 다녔다. 김씨는 “평소 덤프트럭을 몬 덕에 화재현장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소방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촬영용 드론을 가져왔다. 평소 결혼식 현장을 촬영하던 드론 카메라를 잔불 위치를 확인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덤프트럭 운전사 김정오씨가 개인용 방진 펌프 매고 있다. 옆의 차량은 김씨가 운전한 옥계면 의용소방대 전용 소방차다. 편광현 기자

덤프트럭 운전사 김정오씨가 개인용 방진 펌프 매고 있다. 옆의 차량은 김씨가 운전한 옥계면 의용소방대 전용 소방차다. 편광현 기자

4일 화재 당시 김씨가 몬 의용소방차 보조석에는 24년간 옥계에서 택시기사를 해온 김복길(51)씨가 앉아있었다. 택시기사 김씨는 화재 당시 소방차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옥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씨는 “옥계 인구 3700명 중 내 택시에 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집집이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고 했다.
 
김씨는 “불이 났을 때 동네 이장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주소만 대면 다 아는 사람이니까 ‘여기 좀 와 달라’는 문자가 수십통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의용소방차를 타고 대형소방차가 가지 못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옥계시내 뒤편 둑에 물을 뿌렸다. 그 둑에 있는 갈대밭에 불이 붙으면 시내로 불이 옮겨붙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재빨리 소방차를 그쪽으로 몰았다”고 말했다. 그는 “길을 잘 아는 토박이 의용소방대원들은 외지 소방차에 한 명씩 올라타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방진 펌프 진화시범. 의용소방대원들은 사진에 보이는 방진펌프를 매고 초기 화재나 잔불을 진화하러 나선다. 방진펌프의 사정거리는 10미터 이내다. 편광현 기자

방진 펌프 진화시범. 의용소방대원들은 사진에 보이는 방진펌프를 매고 초기 화재나 잔불을 진화하러 나선다. 방진펌프의 사정거리는 10미터 이내다. 편광현 기자

3년째 옥계면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일해온 안정수(49)씨는 인근 공사현장에서 반장으로 일한다. 평소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현장 상황을 감독하고, 안전 여부를 점검한다. 그는 “공사장에서만 26년을 일해왔는데, 평상시 하는 일이 직원들이 보호 장비를 다 챙겼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주머니에 여분용 방진 마스크를 챙기고 화재 현장으로 나섰다. 그는 자기 집의 불을 끄러 나온 주민 중 젊은 사람들에게 주머니 속 방진 마스크를 나눠줬다. 어르신들은 곧장 대피소로 보냈다. 
 
안씨는 주민들과 의용소방대원들이 불이 난 집에 들어갈 때는 보일러 연료통과 도시가스통 위치 등도 파악했다. 그는 “어떤 작업이든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평상시 생각”이라며 “안전장비 여분을 챙기는 것도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24년 동안 택시를 운전해온 김복길씨가 잔불을 끄고 있다. 김씨 등은 옥계면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한다. 편광현 기자

지난 5일 오후 24년 동안 택시를 운전해온 김복길씨가 잔불을 끄고 있다. 김씨 등은 옥계면 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한다. 편광현 기자

김씨 등이 소속된 의용소방대는 ‘의용소방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운영된다. 구성원은 지역 주민 중 신체가 건강하며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를 보조한다. 1958년부터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소방 훈련을 받는다.
 
5일 강릉시 23개 의용소방대에서 출동한 대원은 옥계면 의용소방대원 42명을 포함해 355명에 이른다. 이들의 직업은 사진사, 중국집 사장, 건강원 원장, 보일러 설치기사, 톨게이트 안내원, 호텔 청소원, 철물점 사장 등 다양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번 화재 때 외부에서 지원 온 소방차량에 의용소방대원들이 한 명씩 탑승해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면서 “의용소방대는 소방관들이 지역주민과 협력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공사장에서 현장안전감독으로 일하는 안정수씨의 집 신발장에는 방화복이 놓여있었다. 뒤쪽 방화신발은 불편해서 현장용 단화를 신는다고 했다. 편광현 기자

공사장에서 현장안전감독으로 일하는 안정수씨의 집 신발장에는 방화복이 놓여있었다. 뒤쪽 방화신발은 불편해서 현장용 단화를 신는다고 했다. 편광현 기자

강릉=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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