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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70세 명창 안숙선의 선생님 전상서

중앙일보 2019.04.09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이별이 꿈이던가, 꿈이거든 깨워주고 생시거든 님을 보세. 아이고~ 어쩌거나.”

스승 김소희·박귀희에 바친 노래
제자 키우려 자존심 접은 선인들
이 시대 큰 스승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주말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선 님을 향한 피맺힌 그리움이 울려 퍼졌다. 국악계 톱스타 안숙선(70) 명창이 세상을 떠난 두 스승에게 절절한 사랑노래를 바쳤다. 한양으로 떠난 몽룡에 대한 춘향의 사무친 마음을 읊은 판소리 ‘춘향가’의 ‘비 맞은 제비’ 대목을 가야금 병창으로 불러 젖혔다. 객석에서 탄식이 터졌다.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다.

 
안 명창의 두 스승은 만정(晩汀) 김소희(1917~95)와 향사(香史) 박귀희(1921~93)다. 올해 소리인생 62년을 맞은 안 명창은 저 세상에 있는 두 스승을 무대로 불러내었다. 그의 오늘을 빚은 스승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특히 후반부의 ‘뱃노래’ 장면이 그윽했다. 안 명창은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김소희 선생이 출연한 ‘떠나가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어허허어 어허어야 어기야차 어기야차. 순풍에 돛 달고 어기여차 닻 감아라. 갈매기는 어기야 높이 떠 구름 속으로 넘나든다.’ 그는 “두 분 선생님이 가신 길에 좋은 배라도 한 척 지어 바치는 심정”이라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서울올림픽 폐회식 장면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복판에 ‘S자’ 태극 모양 길을 내고 ‘이야 어허 야하 어허 야하 아아 어허 야하’를 부르며 세계 각국 선수단의 만남과 이별 장면을 노래한 절창 김소희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소리를 세계에 떨친, 지금도 국악계에서 전설 비슷하게 내려오는 대목이다.

 
서소문 포럼 4/9

서소문 포럼 4/9

안 명창의 공연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웠다. 무엇보다 60여 년 소리인생을 이야기 형식으로 흥겹게 풀어냈다. 1960년대 악극단이 전국을 돌며 동네운동장에 마을 사람을 불러모은 일명 ‘마찌마와리(町回り)’ 얘기, 70년대 먹고 살려고 서울 워커힐호텔 명물인 ‘하니비쇼(Honeybee Show)’에 출연한 얘기, 80년대 연습실이 없어 국립극장 보일러실에서 귀곡성을 지르다 ‘보일러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얘기 등이 줄을 이었다.   한 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판소리·민요·단가 등 국악의 다양한 갈래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국악계에선 보기 드물게 두 스승에 대한 헌정 무대라는 점에서 각별했다. 예술적 동료 이전에 치열한 경쟁자가 되기 쉬운 두 거장이 될성부른 제자를 차례로 보살피는 모습이 살뜰했다. 높고 단단한 칸막이, 즉 계보·인맥에 갇힌 사제관계가 국악 발전에 득보다 실이 된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는 요즘이 아닌가.

 
실제로 김소희 선생은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온 젊은 안숙선에게 판소리를 가르친 다음에 동생뻘인 박귀희 선생에게 제자를 다시 보내 가야금 병창을 익히게 했다. 스승들은 허약해진 제자에게 보약을 달여 먹이고, 대학병원에서 최첨단 종합검진도 받도록 했다.  
 
그 둘은 서로를 ‘고등어 한 손’에 비유하기도 했다. 소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제자 앞에서 ‘두 몸, 한 뜻’이 됐다. 제자 안숙선의 회고인 만큼 일부 아름답게 포장된 측면도 있겠으나 ‘더 좋은 소리’라는 목표 앞에선 당대 최고의 자존심도 내려놓았다.

 
국악평론가 김문성씨는 이렇게 진단했다. “예전 명창들은 제자들을 다른 명창들에게 보내 여러 소리를 배우게 했다. 요즘에는 제자들이 한 스승 밑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소리의 깊이는 깊어질 수 있으나 그 폭이 좁아질 우려가 있다. 민요만 해도 경기민요·서도민요라는 고정된 틀 안에 머무르곤 한다. 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춤이면 춤을 다할 수 있는 안숙선 같은 종합예술인이 요즘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국악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무용·서예·미술 등 우리 예술계 전반이 풀어야 할 숙제 중 숙제다. 정치·경제 등 사회 전체로도 ‘큰 스승’ ‘큰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크다. 안 명창은 김소희 선생을 어머니에, 박귀희 선생을 아버지에 비유했다. 김소희 선생은 봄에 곱게 핀 목련, 박귀희 선생은 가을에 흐드러진 국화라고 노래했다. 이제는 안 명창이 더 찬란한 꽃을 키울 차례가 아닐까 싶다. 제2, 제3의 안숙선이 곳곳에 피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게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예의이자 책무일 것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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