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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지지 않으려다 실패한다

중앙일보 2019.04.09 00:09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법무부나 대검과 비교할 때 절대적 숫자(법원행정처 심의관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죠?” “그래서 새벽에 퇴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오로지 사법부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 가지고 버텨오신 거죠?”
 
지난 2일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연거푸 질문했다. 그의 지시를 받아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을 작성했던 정다주 부장판사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이들의 문답을 관통하는 것은 ‘약한 법원’ 이데올로기다. ‘법무부·검찰보다 열악한 여건에 있는 법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법원행정처가 방파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위반할 때도 있다.’ 이 논리에 수많은 판사가 지배됐고 현재도 지배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장 뜻대로 상고법원 도입하지 못하고 예산 적게 배정받는 게 ‘약한’ 것인가. 판사들이 얼마나 제대로 재판을 하느냐, 국민 신뢰를 받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조직논리의 함정에 빠진 건 법원만이 아니다.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제시한 주요 범죄 카테고리 중 하나가 ‘Ⅲ. 부당한 조직 보호’다. ‘부당해선 안 되지만 조직 보호는 필요하다’는 검찰의 내면이 드러난다. 법원, 검찰, 경제, 안보, 언론…. 숱한 ‘약한 ○○’ ‘○○ 위기’ 앞에서 지켜야 할 가치는 사라지고, ‘그 가치를 지켜야 할 우리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지난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 이어 장관 후보자 두 명이 사퇴하거나 지명 철회됐다. 어제 또 다른 장관들이 논란 속에 임명됐다. 최소한의 입장 표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관들이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 침묵에선 ‘이제부터는 잘하겠다’는 다짐보다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가 어른거린다.
 
김 전 대변인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대변해 온 청와대 기류에서도 한번 밀리면 끝없이 밀린다는 마음의 결들이 느껴지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 남긴 쓰라린 경험 때문일까. 진보가 승리하려면 ‘한목소리를 내야 하고, 안으로 뭉쳐야 하고,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일까.
 
노무현은 실패하지 않았다. 패배할지언정 실패하지 않았다. 2009년 5월의 경험은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처절하게 보여줬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검찰을 재활용하는 게 아니라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슈가 된 사건들을 철저히 법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다. 고성·속초 산불을 성공적으로 진화한 것도 원칙과 매뉴얼을 따랐기 때문 아닌가.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에서 미국의 진보 대법관 긴즈버그는 덜 분노하고 더 멀리 나아간다. “우리(여성)는 특혜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워 달라는 것뿐이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고 집요하게 남성들에게 요구한다. 소리를 지르면 화는 풀릴지 몰라도 아무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는 자의 자격을 묻지 않는다. 대척점에 섰던 보수 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2016년 사망)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그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린다.
 
정부와 집권당에 ‘약한’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도, 유효하지도 않다. “개혁이 뿌리내리려면 20년 정도는 집권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무슨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려고 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섣불리 분노하지 말고, 당신들이 그런 말 할 자격 있느냐 따지지 말고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고, 잘못했을 때는 시민들 앞에 고개 숙이고, 자기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칙대로 가라. 그게 촛불의 정신이다. 그게 이기는 길이다.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가드를 올릴 때가 아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왜 정권을 잡았는지 기억하고, 미래를 향해 팔을 뻗을 때다. 패배하지 않으려다 실패할 수는 없지 않은가.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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