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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작년말 “압수수색 18번 받았다” 토로

중앙일보 2019.04.09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달 4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 얘기다. 조 회장에게 이날 행사는 남달랐을 터였다. 하지만 폐 질환을 앓고 있던 그는 태평양 건너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병원 병실에 머물러야 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5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조 회장이 타국에서 별세함에 따라 한진그룹도 소용돌이에 빠졌다.
 

잇단 수사·재판에 스트레스 극심
“주총 이후 폐질환 갑자기 나빠져”

그 중심에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연임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진가 비극의 정점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강조한 이후 주주가 대기업 사주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조 회장은 지병인 폐 질환에다 최근 그에게 닥친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겹쳐 병세가 크게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조 회장이 폐 조직이 굳어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 중 하나인 폐섬유화증으로 사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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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조 회장은 지난해 6월 상속세 탈루 등 혐의로 세 차례나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2014년 ‘땅콩 회항’ 사건과 지난해 ‘물컵 갑질’ 논란 이후 두 딸은 대한항공과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났고 검찰과 경찰 포토라인에 섰다.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도 연차수당 미지급 등으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갑질 폭행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검찰은 물론 경찰·세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의 수사·조사 대상에 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 조 회장과 식사를 했는데 ‘압수수색을 18번이나 받았다’고 했다”며 “얼굴을 보니 넋이 나간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가족을 대신해 날아드는 화살을 떠안아야 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게 대표적이다. 2014년 12월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한 조현아의 아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번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민심은 들끓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대한항공에서 ‘대한’이란 문구를 떼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 회장의 폐 질환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재계에선 한진가의 비극이 창업자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02년 시작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조중훈 회장은 “한민족의 전진”이란 의미를 담아 한진그룹을 창업했지만, 그가 떠난 후 한진그룹은 ‘형제의 난’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내 면세 사업권 등을 놓고 장남과 차남 등이 벌인 법적 분쟁은 6년 넘게 이어졌다.
 
한국 해운업계 1위를 기록하던 한진해운은 경영난을 겪다 2017년 파산했다.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부실을 떠안은 한진중공업의 경영권은 한진가의 손을 떠났다. 한진가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주력 사업인 대한항공 경영권 확보에 비상등이 들어와서다. 
 
강기헌·곽재민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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