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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명 찾은 청도 철가방극장, 전유성 떠나자 발길 뚝

20만명 찾은 청도 철가방극장, 전유성 떠나자 발길 뚝

중앙일보 2019.04.09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지난달 경북 청도 코미디철가방극장.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거나 문이 부서져 있다. [김윤호 기자]

지난달 경북 청도 코미디철가방극장.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거나 문이 부서져 있다. [김윤호 기자]

지난달 중순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읍내서 뚝 떨어진 저수지 쪽으로 들어서자 2층 높이의 우스꽝스러운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화요리 배달용 철가방 모양의 건물에 벽면을 장식한 소주병과 면이 불어 넘친 짜장면 조형물. 개그맨 전유성(70)씨가 이끌던 ‘코미디철가방극장(372㎡)’이다. 전통 소싸움 고장인 청도의 새 명소로 각광받아온 곳이다.
 
하지만 주변은 인적이 끊긴 듯했다. 주차장엔 과자봉지와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고, 극장을 둘러싼 작은 숲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극장에 걸린 ‘웃음건강센터’ 간판이 무색했다. 전씨가 지난해 청도군과 코미디 관련 행사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떠나면서 지금 극장엔 전기마저 끊겼다. 웃음 콘텐트에 산골 속의 뜬금없는 이색 건물이 더해져 관광객을 끌어오던 지방의 성공 드라마는 한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로 바뀌었다.
 
극장 주변은 원래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던 마을이다. 2008년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 마을 주민들이 옮겨와 정착했다. 외딴 마을은 2012년부터 딴 세상이 됐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면서 활기가 넘쳐났다. 청도군과 농림수산식품부가 12억원을 들여 철가방극장을 열면서다.
 
개관은 2007년 전원생활을 하려고 청도에 와있던 전씨가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이끌었다. ‘전유성’이라는 이름의 유명세와 개그맨 지망생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공연, 절로 웃음이 나오는 극장 모습…. 이곳을 찾으면 “배꼽이 빠진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개관 후 7년간(2012~2018년 4월) 20여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공연 횟수만 4400여 회나 됐다. 인구 4만여명의 청도에 새로운 홍보탑이 생겨난 셈이다.
 
2013년 ‘코미디철가방극장’. 재밌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 발길이 이어졌다. [중앙포토]

2013년 ‘코미디철가방극장’. 재밌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 발길이 이어졌다. [중앙포토]

경제적 파급 효과는 적잖았다. 극장 일대 마을(성곡리·현리리·수월리·봉기리) 주민들은 조합을 만들어 외지인들에 음식을 팔았다. 감 따기, 에코백 만들기 같은 다양한 체험 행사도 운영했다. 청도군 측은 “조합에서 식당과 체험 행사 등으로 2015년 이후 해마다 2억원 이상을 벌었다”고 전했다. 극장 문을 닫은 산골은 다시 조용해졌다. 지난해 조합 매출은 6600만원으로 줄었다. 군 관계자는 “극장의 새 활용 방안을 마을 주민들과 같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철가방극장은 지역을 살리려는 또 다른 아이디어다. 유명인사(셀럽)의 명성과 유·무형 자산으로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에 돈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자연환경과 특산물 등을 활용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지역 축제와 한 맥락이다.  
 
셀럽 마케팅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기도 하다. 이렇다 할 홍보 자원이 없는 지자체에 셀럽의 높은 인지도는 절실하다. 셀럽은 지자체의 작업 공간과 재정 지원으로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넓힐 수 있다. 지자체의 셀럽 마케팅이 전국으로 퍼진 이유다. 그러나 셀럽 마케팅은 양날의 칼이다. 셀럽이 떠나거나 추문에 휩싸이면 대박을 내다가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지난달 경남 김해 도요창작스튜디오.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거나 문이 부서져 있다. [위성욱 기자]

지난달 경남 김해 도요창작스튜디오.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거나 문이 부서져 있다. [위성욱 기자]

전국에 제2의 철가방극장 신세는 적잖다. 지난달 20일 오전 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 도요창작스튜디오(5113㎡). 지난해 1월까지 연출가 이윤택(67)씨가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숙소와 연습 공간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2월 중순 이씨가 성 추문 사건에 휩싸여 이곳을 떠나면서 지금은 폐허처럼 방치돼 있었다. 스튜디오 출입문은 한쪽이 부서져 있었고, 행사·공연 시설, 단원 숙소 주변은 잡초가 지키고 있었다. 인근 마을회관에서 만난 70대 주민(여)은 “극단 시설이 텅 비면서 더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해시가 성 추문 사건 후 극단과의 위탁계약을 해지하면서다. 시는 그동안 극단 측에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해왔다. 상하수도료 등 공공요금 지원에서 강변 축제 보조금까지. 하지만 도요창작스튜디오가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현재 터 소유주인 경남교육청과 향후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다. 셀럽의 부침에 도요마을은 웃고 울었다.
 
밀양시도 이씨와 연을 끊었다. 성 추문 사건 후 극단과 밀양연극촌 무료 임대계약을 해지했다. 2000년 시작한 밀양여름공연축제도 없앴다. 사시사철 북적대던 연극촌은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주변 식당이나 수퍼·커피숍의 매출이 급감했다. 하지만 밀양연극촌은 지금 예전의 활기를 조금씩 되찾고 있다. 시 측이 연극촌 활성화를 위해 밀양문화재단을 통해 ‘청년 K-STAR 밀양연극아카데미’를 발족하면서다.
 
셀럽 몰락으로 타격을 받은 곳은 김해나 밀양만이 아니다. 성추행 의혹을 받는 시인 고은(86)씨에 거처(문화향수의 집)를 제공한 데 이어 문학관을 세우려던 수원시도 곤욕을 치렀다. 문화계의 미투(Me Too) 바람은 지방에도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셀럽 활용 마케팅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장을 목도하면서다.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 연구소 전문연구원(심리학)은 “셀럽 마케팅은 지역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지만, 셀럽이 불미스러운 사건과 연루되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위험성도 공존한다”며 “지자체는 세밀한 셀럽 검증 과정을 거치고, 과욕으로 셀럽과 갈등을 빚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도·김해·밀양=위성욱·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